<중앙시평>장쩌민 주석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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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 온다.그것도 하루 이틀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4박5일 체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江주석의 방한은 하나의 큰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중국은 지금까지 한번도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없다.북한의 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은 중국에 조공드리듯 자주 드나들었지만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북한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따라서 江주석의 방한은 파격적이다.드디어 중국은 한반도의 미래가 평양이 아닌 서울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자신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기로 결정한 것 같다.그래서 江주석이 한국을 4박5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고 본다.
중국이 그렇게 결정한 데는 몇가지 고려가 있었을 것같다.
우선 북한에 명백하고 강한 신호를 보낼 필요다.그동안 중국은북한도 중국이 택한 「개방과 개혁」노선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면서김일성.김정일을 직접 중국으로 초청해 설득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개방과 개혁은 체제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개방.개혁은 하지 않는 상태에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만 유치해보려 했다.그러나 실제로 자본과 기술 이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북한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더이상 북한 지도층을 직접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그 대신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북한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같다.
최근 북한은 대만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은 이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측에 그들의 입장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대만 문제는 중국으로선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북한이 대만과의 관계를 잘못 다루면 중국 과의 관계는 포기해야 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한반도의 상황이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그런 경우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볼 때 중국은 늦기 전에 한국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해둠으로써 결정적인 순간에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 도록 사전에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상황은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중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중국이 근대화에 성공하기를 바란다.중국이 만일 근대화에 실패한다면 그 부정적 파장은 우리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중국의 경제 개혁이 성공해야 하고 사회근대화도성공해야 한다.그리고 정치도 근대화됨으로써 제도 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중국은 내정문제에 외국이 왈가왈부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특히 미국이 인권문제로 중국을 비판하는데 대해서는 매우민감하게 반응한다.우리는 중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 뭐라 한다고 해서 중국이 민주화되고 안되고 할 문제가아니다.그러나 우리는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의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을 떠나 근본적이고 장기적 과제로 중국 정치의 근대화 문제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과 당면해 있는 민주화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중국의 안정을 위해 정치 근대화는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둘째로 중국이 세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계 질서의 규범과 규칙을 준수하는 파트너로 남기를 바란다.
이런 면에서 미국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긍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중국이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참여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며 한국이 중국의 APEC 참여 길을 트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외교의 자랑스런 성취라고 할 수 있다.특히 중국은 대량학살무기.미사일등의 수출통제를 엄수해야 하며 핵비확산조약(NPT)체제를 보호하는데 있어서도 단순한 방관자 입장을 취하지 말고 적극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 게도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과 보다 솔직한 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중국은 아직도 북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중국 내부에는 북한을 보호하는 것이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줄 안다.그러나 중국은 한반도 상황이 불안정하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그리고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통일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江주석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될수록 솔직한 의견교환을 하기 바란다.
(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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