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국 가는 이재오 “나를 희생양으로 성공한 대통령 만들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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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으로 떠나는 이재오(사진) 한나라당 의원은 25일 “우리가 세운 정부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5년간 한국에 안 돌아와도 좋다”고 말했다. 측근 의원들이 마련해 준 송별 만찬 자리에서다.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열린 만찬에서 이 의원은 “초기 이명박 정부의 실수가 있다면 내가 모든 것을 안고 떠나겠다”며 “한나라당이 나를 제물로, 희생양으로 삼아 성공하는 정부,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또 그는 참석자들을 향해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세운 정부”라며 “잘못과 책임을 대통령과 청와대에 떠넘기지 말고 ‘내가 곧 대통령이다’는 생각으로 강한 여당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이 의원은 홍문표·이재웅 의원 등 낙천·낙선자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 드려야 할 분들”이라며 “나는 대선만 이기면 뭐든 다 되는 걸로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이후 자신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정치적 피해를 본 이들에게 대한 사과다. 이날 만찬에는 한나라당 소속 현역 의원, 18대 총선 당선인, 원외 당협위원장 등 1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특히 정몽준·김형오·안상수·이윤성 의원 등 당 중진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때문에 만찬장에서는 “‘2인자 이재오’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부 참석자는 만찬에 앞선 송별사에서 이 의원의 미국행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차명진 의원은 “이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자신을 10년간 가뒀던 사람(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표를 지칭)과도 화해했다”며 “이제는 ‘이재오가 있으면 한나라당에 안 간다’는 사람들(친박근혜계 인사들) 때문에 (해외로)나간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찬도 지역구(서울 은평을) 당협 관계자 100여 명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라가 어려운 시점에 떠나려니 송구스럽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26일 오전 10시50분 미국 워싱턴 DC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는 이곳에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6개월간 머물 예정이다. 하지만 한 측근은 “이 의원이 예상보다 일찍 귀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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