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위기는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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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중국 전역이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데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이 와중에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기꾼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엄마·아빠, 지진 때문에 다쳐서 병원에 있어요. 병원비가 필요하니 아래 은행계좌로 빨리 송금해 주세요’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무차별 전송되고, 인터넷에서는 ‘지진 피해자를 위한 기부금을 모은다’는 개인 홈페이지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대참사는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런데 이들이 아니라 중국 정부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쓰촨성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안타까워하고, 희망을 주려 애썼다. 국민들은 감동했다. 중국은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을 국가 애도일로 정해 지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국가 애도일은 중국 정부 수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진이 발생한 지 꼭 1주일 되던 19일 오후 2시28분을 기해 전국에서 3분간 묵념을 했다. 중국 톈진에서 열린 아시아 미디어포럼에 참석했던 필자도 그 시각 회의를 중단하고 묵념을 해야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88일 앞두고 터진 대참사로 올림픽 개막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2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리장춘 상무위원(공산당 서열 5위)은 “대참사로 인해 오히려 중국은 하나가 됐다”고 평가했다. 전국에서 애도의 물결이 넘쳤고,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연상시키는 성금 모금 운동이 벌어지면서 순식간에 수억 위안의 성금이 모였다.

중국을 돕는 세계 각국의 손길이 몰리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많이 누그러졌다. CNN 등 주요 외국 언론들은 연일 중국의 대참사를 주요 뉴스로 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면서 올림픽을 둘러싼 잡음이 잠잠해진 느낌이다.

눈길을 국내로 돌려보자. 2008년 5월의 대한민국은 위기다. 광우병 논란으로 민심은 여전히 뒤숭숭하고, 조류 인플루엔자(AI)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도대체 먹을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국제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환율마저 오른다. 물가는 비상이다. 안팎으로 되는 게 없다. 그런데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사태 파악도 못한 주무 장관들은 수습은커녕 복장을 뒤집어 놓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돼 만신창이가 됐다. “억울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20년 만에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바람에 정권 초기의 ‘허니문’ 기간도 없었고,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53석이나 얻었지만 아직 17대 국회가 끝나지 않아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사실과 다른 광우병 괴담이 퍼지면서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임기 말년도 아니고 이제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대국민 사과를 했을까. 그런데 그 진실성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분위기다. 대국민 사과는 대통령 혼자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런 고백이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장관 입에서도, 한나라당에서도 나오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아마추어 좌파 정권의 미숙함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마추어 우파 정권을 원한 것도 아니다. 5년 전, 10년 전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좀 더 세련되고, 발전적이고, 프로페셔널다운 국정 운영을 원한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을 삼는다면 정권 초반에 위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기에.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양털을 깎는다고 한다. 일반의 상식과는 정반대다.

그런데, 털을 깎지 않은 양은 게으름 피우다 얼어 죽는 경우가 있지만 털이 깎인 양은 죽지 않으려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더 튼튼해진다고 한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초반에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면 회복 불능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는다. 일찍 맞은 매를 보약으로 삼고 더 튼튼해지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손장환 기획취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