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지리기행>4.망월동과 연희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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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일 나는 망월동에 있었다.연희동에 산다는 어떤 사람의 결말을 보며 서울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그것은 비극도 처참함도 아닌 허망한 슬픔이었다.
광주 가는 길에는 눈발도 흩날리고 진눈깨비도 뿌리고 간혹 천둥.번개가 치기도 했다.슬픔은 그런 식으로 마음을 적신다.
망월동의 저녁,음산한 바람과 함께 간간이 비도 떨어진다.1980년5월27일 126명의 주검들이 비닐에 싸인 채 청소차에 실려 망월동 제3묘역에 부려지던 날 우리를 한없는 슬픔에 젖게한 그와 그의 일당은 고급 승용차에서 승리를 감 축하고 있었으리라. 그 곳에서는 또한 5.18학살자 처단 특별법 제정 촉구서명도 벌어지고 있었다.나는 하늘의 뜻(天道)이 결국은 이뤄지고 만다는 것을 믿는다.그러나 역사가 반드시 그 뜻을 따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아버지,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 는 것인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는 소년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역사를 위한 변명』을 쓴 마르크 블로흐는 사회적 조건이란 그 깊은 성격에 있어서 정신적이라고 답한다.역사에 있어서는 정의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천도를 믿었던 것일까.
기실 망월동의 본래 동이름은 북구 운정동이다.하지만 80년 당시 이곳 입구가 망월동이었기에 지금은 모두들 그 이름을 쓴다.망월동은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역사의 상징이 됐다.
구태여 운정동을 되찾아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옥토 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국(玉兎望月形)이기 때문에 땅이름이 망월동이 됐다는기록이 있으나 지금의 망월동은 조금도 그렇게 보이지를 않는다.
이곳에서 차마 동화를 떠올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형국은 망월동에 희망을 갖게 한다.달을 바라본다는것은 임신을 상징하는 일이기에 그렇다.그것은 아직 솟아오르지 못한 씨앗을 지칭하는 일이고 고치에 감싸인 나방을 뜻하는 것일수 있다.땅을 뚫고 나오고 탈바꿈을 하면 수많은 옥토끼들이 이땅을 뒤덮을 수 있 는 일 아닌가.게다가 앞쪽 멀리 보이는 무등의 산자락은 이 터를 보호하는데 조금의 손색도 없으니 기다려보는 일이 무망한 노릇만은 아니지 않은가 싶다.게다가 망월동은무엇이고, 연희동은 무엇인가.중요한 것은 땅 이름이 아니라 사람 노 릇이 어떠 했느냐다.
문득 풍수가 말하는 지기감응론(地氣感應論)에 생각이 미친다.
땅이 진실로 사람에게 응보(應報)를 내리는 것이라면 여기에 묻힌 분들은 어떤 식으로 풍수가 설명해야 하나.그들의 공과 그들의 한을 이 땅은 어떤 상으로 대답을 하였나.지금 까지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옳은 얘기일 것이다.그러고도 땅의 감응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단연코 아니다.만약 이런 것이 풍수라면 그런 풍수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허물어져야 한다.그렇다면 풍수는무엇인가.
나는 풍수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라고생각한다.아니,그렇게 받아들인다.땅은 그저 무대일 뿐이다.그 위에서 이뤄지는 역사는 각본일 터이고 그 위에서 일을 꾸려 나가는 사람은 배우다.무대는 중요하다.그러나 그 무 대가 좋은 것이라고 해서 엉터리 배우들이 비윤리적 각본을 가지고 공연을 한들 좋은 연극이 될 까닭은 없다.반대로 훌륭한 배우들이 인간적인 각본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면 비록 무대가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크게 비난받을 연극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풍수사상에서 땅은 무대다.우리는 좋은 무대를 갖기 위해 터를고르기는 하지만 시답지 않은 배우가 나쁜 각본을 가지고 좋은 무대를 차지했더라도 결코 좋은 연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니,그래야만 한다.중요한 것은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위와 역사 의식일 것이다.예컨대 삼풍백화점 참사는 땅의 잘못이 아니다.터가 나빠 그렇게 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부실공사라는 명백한 사람의 잘못을 터에 뒤집어 씌우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거니와 결코 풍수적일 수도 없다.망월동의 한과 5.18의 죄인들은 사람들이 풀어주고 단죄해야 할 어떤 것이지, 땅이 풀어줄 성질의 것이 아니다.우리는 그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그래야만 오늘에 다시 풍수를 말하는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우 리는 오늘 당시 배우들을 재평가해 잘못한 자를 가려내어 그 죄를 밝혀내고 배역을 바꾸는 동시에 되지 못한 각본을훌륭한 역사의식을 가진 바람직한 희곡으로 갈아 끼울 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지,죄없는 무대를 덧대 그 터가 나쁘니, 살이 끼었느니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망월동 묘역 주변은 지금 성역화 공사가 한창이다.그렇지 않아도 찌푸린 날씨에 공사 현장은 그저 을씨년스럽고 살벌한 느낌을줄 뿐이다.일이 끝나고 주위환경에 대한 복원이 끝나면 이런 감정은 줄어들겠지만 무대를 고친다고 배우가 갑자기 희대의 명배우로 탈바꿈하겠는가,각본이 명작으로 둔갑하겠는가.지금 묘역 화장실은 남녀 구분도 돼 있지 않고 그나마 변기는 세개 뿐이다.일의 순서를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광주에서는 지금 비엔날레가 한창인데 망월 묘역 입구 복다우 버스정류장 주변에는 그에 대항하는 안티비엔날레가 차려져 있다.
그것은 「역사는 산을 넘고 강물로 흐르고」라는 주제의 통일미술제라고 한다.솟대와 장승 두 그루,펄럭이는 만장 여럿만이 빗소리 바람소리 속에 흐느낌처럼 들리고 있을 뿐인데,나는 그것이 풍수의 소리처럼 여겨질 뿐이다.그러니 풍수비수(風水悲愁)의 땅이리. 망월동 묘비에 붙박혀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들,어린 학생,면사포를 쓴 젊은 여인,남루한 작업복 차림의 젊은이.연희동 대저택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민첩하고 건장하게 생긴 신사들의 경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망월동과 연희동.여기에 풍수를 말할 수는 없다.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풍수가 있다면 그런 풍수는 영원히 사라져버리거라.
(前서울대교수.풍수지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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