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씨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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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태우(盧泰愚)씨는 진정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러기에 핵심사항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회피와 부인으로 일관해 16시간이 넘는검찰조사를 알맹이가 없는 속빈 강정으로 만들어버 린 것이다.
盧씨는 결정적인 대목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국가의불행을 막기 위해,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그렇게 국가의 불행과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재임시에 그에 맞는 행동을 했어야 할 일이지,이 마당에 와서 「국가의 불행」「나라의 장래」운운하다니 뻔뻔하다는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전해지고 있는 盧씨의 답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뇌물수수혐의에서는 벗어나고,정치적 흥정이나 고려에 힘입어 극단적인 처벌만 모면해보려는 기색이 농후하다.모든 기업들로부터 받은 돈이 이권의 대가도,강압에 의한 것도 아닌 「성금」일뿐이라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盧씨는 분명 잘못 생각하고 있다.그렇게 혐의를 부인하고,공을정부에 떠넘긴다 해서 곤경을 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盧씨의 이런 몰염치한 태도가 측근 율사들의 법률적 조언에 의한 것이라면 측근들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盧씨가 모든 것을 밝히고,석고대죄(席藁待罪)한다면 또 모르되현재와 같은 발뺌을 계속한다면 설사 정치적 흥정이 이뤄지는 한이 있어도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盧씨가 해야 할 것은오직 한가지 뿐이다.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솔직 히 털어놓아야한다.그 뒤의 문제는 그 자신이 염려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법과 국민의 판단에 의해 처리돼야할 것이다.
盧씨가 끝내 입을 안 연다고 해도 방법이 없지는 않다.시일이오래 걸리더라도 반복적인 소환및 수사를 벌이는 것이다.또 盧씨에게 돈을 준 사람,받은 사람들이 엄연히 있는 이상 그들이 입을 열면 된다.입을 다문다 해서,파장이 크다고 해서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내서는 「한국의 수치」를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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