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광주군 원당리 박진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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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가」하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다.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면서도 인간은 두마리토끼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그러다 겨우 한마리만 잡거나,혹은 두마리를 모두 놓치고 말지만 처음부터 한마리만 노리고덤벼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대부분의 경우 두마리 토끼는 운명적으로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 「사회인으로서의 성공」과 「가장으로서의제자리 지키기」는 운명적으로 짐지워진 두마리 토끼다.독신을 고집하지 않는 한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다.
국민학교 때 고향 익산에서 올라와 서울에서만 약 30년을 살다 지난 93년9월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경기도광주군퇴촌면원당리로 낙향한 박진수(朴珍洙.40)씨는 그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한마리만 선택했다가 결국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중소건설업체 이사로 잘나가는 편에 속했던 그는 30대의 대부분을 일에 파묻혀 살았다.아내 생일은 그냥 지나쳐도 거래선의 생일은 잊는 법이 없었고,휴일 아이들과 공놀이 한번 못하는 한이 있어도 거래처 사람들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얼굴 을 내밀었다. 보통 3~4개 현장을 한꺼번에 관리해야 했던 그로서는 챙겨야 할 사람들이 유달리 많았다.특히 관급공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접대용 술자리도 거의 매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일에 미쳐 살던 그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30대 중반을 막 넘어선 36세 무렵이었다.어느날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를 하러 갔는데 열탕에 발(왼쪽)을 넣어도 아무런 감각이없었다.오른쪽 발의 감각은 그대로인데 왼쪽만 그 랬다.그때부터왼쪽다리에 마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에 미쳐 삶의 한켠으로 아예 제쳐둔 가정은 그렇다치고 제 스스로를 추스리지도 못할 지경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91년1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그러나 그가 꾸려오던 현장은 마무리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해 6월께 가서야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그때부터 주로 경기도 광주일대를 돌아다니며 정착지를 찾았다.
초월면지월리에서 비닐하우스 축사를 빌려 돼지 기르는 일을 몸으로 배우고 오포면신현리에 터를 잡아 본격적으로 돼지 사육에 나섰다.50마리의 종돈(種豚)을 사서 약 2년만에 10배인 500마리로 키웠다.규모가 늘자 힘이 부쳤다.그럴 즈음 이웃 사슴목장에서 같이 해볼 것을 권했다.마침 돼지 값이 좋을 때라 축사를 모두 정리하니 3,500만원이 모였다.
93년9월 지금의 원당리 야산 사슴목장 2만5,000평을 보증금 2,000만원에 빌리고 꽃사슴 30마리를 1,500만원에인수하는 한편 엘크 5마리를 3,500만원 주고 더 사들여 일출사슴목장(0347-64-2959)을 시작했다.
서울에 떨어져 살던 가족들도 그제서야 이곳으로 완전히 이주를했다. 이제 엘크만 20마리로 늘어나 녹혈.녹용 판매로 연간 3,000여만원의 순수입을 올리는 그는 서울에서 몸을 던져 좇던 것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이었던가에 대해 생각을 하곤한다. 끝내 한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할 토끼를 무모하게 좇았던것은 아닌가 뒤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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