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15년만에 개인전-1일부터 한달간 호암아트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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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전통 한국화의 인습의 틀을 깨는 현란한 색감과 빈틈없는 구도,정교한 붓놀림으로 독자적인 채색화의 경지를 일궈낸 원로 한국화가 천경자(千鏡子.71)화백이 15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갤러리에서 중앙일보사와 삼성문화재단,KBS가 공동개최하는 『천경자-꿈과 정한(情恨)의 세계』는 50여년이 넘는 千화백의 작품세계를 총 결산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千화백은 작품속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 왔다.일제하의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수많은 역경과 좌절을 겪은 여인의 한과 고독,그속에서 추구한 환상으로서의 「꿈」,그리고 자식을 둔 한어머니로서의 애틋한 정과 사랑을 모두 함께 예술로 승화시켜 작품속에 담아냈다.따라서 여인과 꽃,뱀,탱고의 리듬,정열적인 아열대의 설화를 소재로 한 千화백의 작품들은 그 현란한 색채의 향연 속에서도 잔잔한 고독과 슬픔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이번 전시회는 千화백 고유의 작품세계와 작품이해의 배경이 되는 삶까지도 조망할 수 있게 기획된 것이 특징.꽃과 여인,남국의 정취를 담은 풍물 등 40년대 작품에서 부터 근작에 이르는 회화 90여점과 스케치 30여점 등 모두 120여점이 출품된다.
1942년 도쿄(東京)유 학시절에 그린 초기작부터 지난 91년가짜「미인도」사건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생명과 같은 붓을꺾었다가 다시 일어서 노년의 신명과 육신을 불사르며 그린 최근작까지 망라됐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1부의 주제는 「삶과 꿈」.삶과 죽음,불행과 행복 등 내면의 갈등을 작품속에 쏟아 넣었던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 「생태」「내가 죽은 뒤」등 30여점이 선보인다.
2부는 아프리카와 중남미등 수차례의 외국여행에서 느낀 남국(南國)의 우수와 정취를 통해「원시에의 향수」를 되새긴 60여점이전시된다.3부는 월남전과 스케치기행을 중심으로 꾸몄으며 전시기간내 전시실2층 비디오실에서는 千화백의 작품세계와 삶을 돌아볼수 있는 비디오도 상영된다.
고희를 지난 나이로 여덟번째 갖는 개인전을 앞둔 원로 여류화가 千씨는『처음 데뷔하는 신인처럼 가슴이 떨린다』고 실토하고 『나이도 있고 해서 마지막 개인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감회를밝히고 있다.
전시기간중 삼성본관 3층 국제회의실에서는 미술사가 송미숙씨의「천경자-감상주의적 상징주의화가」를 주제로 한 강연회(9일 오후2시)와 심포지엄(21일오후2시)도 개최된다.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게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천화백의 작품주제나 표현기법의 변화를 쉽게 살펴볼 수 있다.신들린 듯한 화려한 색채,꽃과 여인 등으로 상징되는 작품세계는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 을 즉각 끌어 당기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이는 작가의 탁월한 직관과 환상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동양화의 의례적인 전통화법을 탈피,독창적인 화풍을 일구어낸데서 오는 매력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따라서 작품 자체가 전해주는 메시지와 함 께 전통 동양화와의 차이점을 눈여겨 보는 것은 千화백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더 잘 알 수 있는 한가지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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