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여진 온다” 200만 명 집 뛰쳐나와 노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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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중심부의 런민(人民)공원 내 어린이 자동차 놀이장에서 300여 명의 시민이 19일 노숙을 하고 있다. [사진=최형규 특파원]

쓰촨(四川)성 대지진에서 큰 피해를 보지 않았던 청두(成都)시가 ‘노숙자의 도시’로 변했다. 시 주변에 곧 강력한 여진이 있을 것이라는 중국 지진국 예보로 시민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어서다.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는 시민들도 급증하고 있다. 뒤늦게 시 당국은 20일 오후 시 대부분이 강력한 여진 지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다.

◇야영지가 된 공원=20일 오후 1시. 청두 중심부의 런민(人民)공원의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파랗고 노란 텐트가 자리하고 있다. 정문 입구에 있는 어린이 자동차 놀이장 100여 평은 자리를 깔고 숙식하는 300여 명이 차지했고, 화장실 옆 공간에도 건물 벽을 등지고 수십 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아이에게 젖 먹이는 30대 주부도 있고, 휠체어에서 아들이 떠 주는 죽을 삼키는 70대 노인도 보였다. 공원관리소 측은 1만 명 정도라고 말했다. 대부분 19일 오후 9시쯤 중국 지진국이 곧 청두시 주변에 규모 6~7의 강력한 여진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 예보를 듣고 집을 나온 시민들이다. 청두시는 이날 저녁 노숙을 한 시민이 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00만 명을 넘는다고 추산했다.

70이 넘은 노모를 업고 텐트를 챙겨 집을 빠져나온 천훙(陳紅·45)은 “집이 아파트 10층인데 간밤에 엘리베이터를 서로 먼저 타려고 다투다 노모가 얼굴에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고 말했다. 천훙은 그나마 미리 텐트를 챙겨 놓아 다행이다. 공원 앞 인도 2㎞는 이미 승용차들이 점령했다. ‘상하이(上海) GM’의 소형 자동차에서 밤을 지새운 장젠궈(張建國)는 “텐트가 없어 네 식구가 차 안에서 쪼그리고 밤을 새웠는데 네 살 된 아들이 밤새 울어 한숨도 못 자 괴롭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 지진의 두려움에 떠느니 일주일 정도는 여기서 지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시 빈허루(濱河路) 주변 주옌차오허(九眼橋河) 주변도 집을 나온 시민 2000여 명으로 붐볐다. 모두 20일 밤 이전에 강력한 여진이 있다는 예보를 듣고 필요한 것만 챙겨 나온 시민이었다. 바로 옆 호텔에서 여진 예보를 듣고 나온 캐나다인 제임스 칸은 “중국인 사업 파트너가 오후 10시쯤 전화를 해 호텔 방이 20층으로 너무 높아 여진이 나면 위험하니 자지 말라고 해 빠져나왔다”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텐트가 곧 가족의 생명=20일 오전 11시 촉한(蜀漢)의 황제인 유비(劉備)와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모신 무후사(武侯祠) 건너편. 1000여 명이 서로 앞줄에 서려고 다투느라 아수라장이다. 한 등산용품 가게에서 싼값으로 텐트를 판다는 소식에 오전 6시부터 몰려나온 시민들이다. 그나마 텐트가 500여 개에 불과해 5시간 이상 기다린 시민들이 가게 주인에게 30여 분간 항의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텐트가 부족하다 보니 텐트 가격도 세 배나 올랐다. 청두시의 경우 지진 전 100~200위안(약 1만5000~3만원) 하던 4인용 텐트 가격이 12일 이후 300~600위안으로 올랐다. 그나마 대부분 상점에서 품절이다. 청두시 신경과 의사인 천창쥔(陳昌君)은 “지진에 대한 두려움으로 숙면을 못 이루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불면증을 넘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두(쓰촨)=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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