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키즈] 네 옆에 보물이 숨어있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어릴 적 나는 꽤 훌륭한 비행기를 한대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는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쫓아다녔다. 대개는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혼자 길을 걸을 때면 슬며시 나타나 부우웅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날아다니곤 했다. 실은 그 비행기의 조종사는 바로 나였다. 비행기는 다름아닌 내 손이었으니까.

심심하게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손에 시선을 모은 채 그 손으로 비행기가 나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손목을 움직이는 간단한 조작으로 비행기는 잡초 위, 담장 옆을 부드럽게 날아다녔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비행기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가끔 '손 비행기'를 날리는 꼬마를 발견할 때가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꼬마에 비하면 나는 100배 쯤 되는 큰 돈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꼬마보다 나는 욕심나는 대로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원체 유치한 면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나는 꼬마의 비행기만큼은 손에 넣을 수가 없다.

합리적인 어른들은 비행기 상상 따위에 푹 빠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 시간에 대출금 이자와 한달 생활비 계산에 틀린 데는 없나 등을 생각한다. 그래서 꼬마가 가진 멋진 비행기를 가질 수가 없다. 어렸을 땐 나를 꼭 붙어다니며 달콤한 즐거움을 주던 그 비행기를.

상상의 힘!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기막힌 보물이다. 그 보물을 더 다채롭게 꾸밀 수 있는 두 가지 책이 새로 나왔다. 하나는 아주 소박하고 또 하나는 꽤나 집요하다. 그리고 그 둘은 우리에게 무척 가까운 데서 상상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비밀의 문을 제시한다. 발가락과 온갖 잡동사니를 통해서.

'발가락'은 정말 우리에게 가깝다. 무릎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꼬물거리며 열개나 되는 그것들이 붙어 있다.

폴란드 아주머니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멀쩡한 발가락들을 가지고 이리 바꾸고 저리 바꿔가며 상상의 여행을 한다. 가만히 발가락 열 개를 보며 상상해 보라. 거기서 무슨 마술이 나올 수 있겠는가.

어쩌면 많은 사람은 무좀약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폴란드 아주머니와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여기 보물 열 개가 붙어 있었군" 할 것이다.

다른 책 '난 네가 보여!'를 보면, 우리는 잡동사니의 놀라운 세계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다. 책을 보고 난 다음에 맨 먼저 조안 스타이너의 작업실이 무진장 궁금했다.

지금쯤 또 무언가 새로운 게 만들어져 있을텐데, 그건 또 어떤 상상의 열쇠를 내게 던져줄까? 스타이너는 상상과는 무관하게 생긴 것 같은 작은 사물들을 모아 놀라운 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둔탁한 쥐덫과 낡은 스웨터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책장을 열면 쥐덫은 뻔뻔하게 창문인 척, 스웨터는 능청스럽게 건물 외벽인양 우리를 놀라게 하며 상상의 세계로 확 끌어당긴다.

어린이는 언제.어디서든지 놀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는 데 천재다. 그 방법론 중의 하나가 바로 상상의 힘이다. 상상하는 재주만 있으면 금세 세상은 재미로 가득 채워진다.

쓸모없는 병뚜껑 세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컵이 되고 배가 되고 우주선이 된다. 그리고 두 손은 괴물이 되고 지구의 용사로 되는 것이다.

어린이의 놀라운 상상의 힘에 맞장구를 쳐주는 책이 두 가지나 나왔으니 우선 나부터 박수를 쳐야겠다. 짝짝짝!

이형진<그림책 작가, '끝지'의 저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