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비자금 파문-계좌 추적조사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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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금융사건 수사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 불리는 계좌추적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나.정상적인 추적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자금이동에 사용된 수표의 번호를 알아내고 이 돈이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옮겨갔는지 파악하면 된다.
예컨대 갑이 을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심증이 있다고 하자.이 경우 갑의 예금계좌에서 인출된 수표가 을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만 확인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正)추적」이라고 한다.
반면 을의 계좌에 입금된 수표번호를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을 「역(逆)추적」이라고 한다.
을이 뇌물을 받았다는 제보가 있을 경우 을의 예금계좌에 입금된 수표가 어떤 경로를 통해 누구의 계좌에서 흘러들어 갔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역추적은 정추적에 비해 어렵다.
혐의자의 예금계좌에 들어간 돈이 여러번의 입.출금을 거쳐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뇌물을 수수한 시점이 분명하면 입.출금내용에 대한 조사기간을 좁힐 수 있어 추적이 쉽다』고 말한다.
93년 동화은행 비자금사건때는 안영모(安永模)행장이 뇌물을 준 시점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자금추적에 큰 도움이 됐던 것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수표추적을 통해 쉽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 뇌물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 모 두 금융메커니즘에 무지했을 때가 많다.
노련한 「프로」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필사적인 돈세탁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꼬리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돈세탁방법은 현금화다.일련번호의 꼬리표가 있는 수표와는 달리 현금은 꼬리표가 없기 때문이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비자금조성및 관리과정에서 나타난 돈세탁수법은 정보사부지사기사건.가짜 양도성 예금증서(CD)사건.동화은행비자금사건등에 필적할 만큼 복잡하고 치밀해 수사진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계좌추적작업은 1개월 가까운 시간 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에서는 「뒤가 구린」수표를 받아놓고도 현금으로 입금시킨 것처럼 위장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거액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수사과정에서는 중요한 체크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검찰이나 은행감독원은 특정지점에서 현금 인출이 대량으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면 즉각 시재금확인에 들어간다.특정시점의 시재금을 확인해 통상보유액수인 1억~3억원과 크게 차이나면 「위장」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가명계좌의 추적은 아무런 단서가 없을 경우에는 투서나 제보가없으면 「한강에서 모래알 찾기」만큼이나 어려워 장기화하는 것이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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