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타(他)문화’, 존중하고 배려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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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내일(20일)은 ‘세계인의 날’이고 이번 주는 다문화 체험 주간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버리고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한글 발표대회, 다문화 음식축제 등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예술·체육 행사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외국인도 우리의 동반자이며 협력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경기도 평택시는 미군부대 이전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전국의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었다. 타민족과의 문화적 접점이 자연스러운 문화적 교류의 장소가 되지 못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배타성을 가진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가 1998년에 1800명이었으나 현재 1만여 명으로 10년 사이 5배 이상이나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역사회의 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질문화라고 생각했던 타문화가 이제는 다문화로 접근되고 있는 것이다. 거주 외국인 지원 조례가 제정되고 민간 전문가 등 10여 명으로 ‘외국인 지원시책 자문위원회’도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민의 역사로 출발한 그 나라가 외국인들도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의 지역도서관은 민간 차원에서 외국인이 정착하는 것을 지원하는 시스템의 한 요소다. 다양한 국가 출신 사람들이 모여 어학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낯선 사람을 배척하는 구조다. 현재 사는 사람 위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외국인은 소외된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은 또 다른 배타성을 보이고 이는 우리 사회의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모여 사는 곳을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라 내국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다민족 문화의 출발은 도와주는 관계라기보다는 협력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각 문화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만년 단일민족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는 21세기에 들어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거주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배타적 국민의식이 팽배해 있고, 그들은 적응 과정에서 언어소통 문제, 문화적 차이, 빈곤 등으로 정착에 애로를 겪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상당히 미흡한 상태로 방치돼 왔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다문화 활성화 사업을 보면 이벤트 위주의 행사에 치우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체계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부족했다.

언어 습득, 생활 정착을 위한 일상적이고 교류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근로자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 이주 여성, 유학생, 외국인 자녀 등 다양한 목적의 거주 외국인들을 위한 종합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일본이 이민청 신설을 통해 외국인에 대한 종합적 정책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정부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교류도 필요하다. 다문화 가족을 당당한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시민사회의 의식 전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공하는 데에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인 아이들이 변화에 가장 빠르게 변화할 수 있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참다운 민주사회는 소수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다. 이것이 자유주의가 갖는 강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 가족이 우리 사회에서 정착돼 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이해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이원희 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