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준비 부실한 EBS 수능 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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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시행되는 교육방송(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가 자칫하면 새로운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학부모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던 교육부는 방송 시작이 4월 1일로 임박했지만 아직도 허둥대고 있어 학교와 학생들이 덩달아 우왕좌왕하고 있다.

EBS 강의가 성공하려면 1차적으로 160만명의 강의대상 학생이 원하는 시간대에 마음대로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인터넷 동시 접속 가능 인원이 12만명에도 못 미쳐 접속자가 몰리면 서버가 과부하돼 다운될 가능성이 크다. 위성방송 난시청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강의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전국 고교의 절반 가까이가 고3 교실에서 인터넷을 통한 EBS 수능강의를 시청하기 힘들 정도로 속도가 느린 전용회선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EBS 강의 시청이 원활하지 않거나 불가능하게 될 때 여기에 의존하는 교내 자율.보충학습도 혼란이 불가피해 학생들이 다시 학원 강의로 빠져나가는 사태도 예견된다.

일이 이처럼 꼬인 것은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17일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EBS 강의를 내놓았지만 서버용량이나 위성방송 난시청 문제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는 없었다. 유명 강사를 스카우트했다고 선전하지만 강의 자체의 경쟁력도 자신할 수 없는 처지다. 온라인 사교육 업체는 과목당 복수의 강사를 두고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한 반면 EBS 강의는 한 사람이 한 과목을 전담하고 있다. 교재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모두가 엄청난 작업을 한달반 만에 해치우려다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EBS 강의를 정리해 주겠다는 학원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EBS 강의가 사교육비 경감이 아니라 사교육비 추가라는 대재앙을 부를 수 있다. 교육당국은 바짝 긴장해 양질의 강의를 차질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