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중의 갑’ 국세청 “세무조사 다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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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국세청이 “세무조사의 A부터 Z까지를 모두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16일 열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부분적인 개혁만으론 납세자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며 “세무조사 과정의 불신요인을 모두 찾아내 근본적인 쇄신을 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바꾸나=세무조사의 시작은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하반기에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상 선정 심의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세무조사 비율과 중점 조사업종 등 조사기준을 정하고,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국세청이 선정한 뒤 대상 납세자에게 일방 통보하는 식이었다.

조사 대상으로 선정돼 불안해하는 납세자를 위해선 ‘사전 오리엔테이션제도’를 도입했다. 담당 직원이 미리 ▶선정 사유 ▶조사 방향과 절차 ▶납세자의 권리 ▶준비 사항 등을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또 조사기간 중에 ‘중간 설명 제도’를 도입해 남은 조사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게 된다.

기업이 세무조사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세청의 자료 요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과도한 자료 요구를 줄이기로 했다. 조사 마무리 시점에 국세청은 불필요한 세금 추징을 당하지 않도록 기업에 회계·세무 분야 컨설팅을 하고 불복 절차도 설명해 주기로 했다.

조사요원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러 전문지식이 부족한 요원은 조사 분야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또 납세자가 조사요원의 업무 처리와 청렴성을 평가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국세청은 이 결과를 인사에 반영한다.

◇개선 효과 있을까=국세청은 연간 매출액 10억원 미만인 21만 개 법인과 1억원 미만의 개인사업자는 3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하기로 했다. 또 추징 목표를 세워놓고 조사하는 관행을 없애고, 세무조사 기간도 함부로 연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달에 지방국세청과 세무서에 민간위원이 참여한 납세자보호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세무조사 기간을 연장할 때는 반드시 이 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재계에선 이런 움직임을 환영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상무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을 혁신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며 “합리적이고 투명한 선정 기준을 만들고 조사 기간도 지금보다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만 명에 달하는 거대 국세청 조직이 바뀔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납세자도 적지 않다.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한 기업인은 지금도 왜 조사대상이 됐는지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세법 조항이 많으니 세무 공무원의 재량권이 크다”며 “현실적으론 증빙이 어려운데도 엄격한 잣대로 세금을 부과할 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모호한 세법이 그대로이고 수십년간의 조사 관행에 익숙한 조사요원이 그대로인데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날 관서장 회의에선 특별 강연자로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이 초대됐다. 3년 만에 회사를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정 사장은 현대카드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적합한 조직 문화가 없으면 새 시스템과 개혁이 정착될 수 없다”며 “이는 국세청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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