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재앙 쓰촨성, 문명 용광로 … 덩샤오핑·소동파 낳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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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의 공포와 두려움이 몰아닥치고 있는 쓰촨(四川)은 원래 문명의 고장이다. 수많은 인물을 배출해 중국 문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취를 만들어 낸 쓰촨이지만 대자연의 거센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쓰촨은 해발 5000m 이상의 티베트 고원이 거친 발걸음을 재촉하다 고요하면서 넉넉한 청두(成都) 평원과 만나 독특한 인문·지리 환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쓰촨은 신석기 시대 이래 이곳에 정주했던 중국 서남부의 토착 문화와 북방의 한족 문명이 버무려져 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지역이다. 그래서 쓰촨은 많은 것을 한데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매우 실용적인 문화적 성향을 보인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우선 이곳 출신이다. 그가 주창한 개혁·개방,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매우 특이한 혼합형 사고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섣불리 흉내 내기 힘든 쓰촨식 실용주의의 산물이다.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 문학사에서 남다른 명예를 유지하는 쓰촨의 명인도 있다. 북송(北宋: 960~1126년)의 관료이자, 대문호인 소동파(蘇東坡)다. 그는 유교의 가르침과 도교의 초탈, 비움(空)의 사고를 설파한 불교의 가르침을 한데 엮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정밀한 논리력을 갖춘 데다 편향성을 극복해 중국 문학 역사에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 기인이다.

이같이 유연한 사고 방식을 선보이는가 하면, 때론 강렬한 기질을 함께 뿜어내는 사람들이 쓰촨인이다. 중국 역대 왕조사에서 유일한 여자 황제로 기록되고 있는 무측천(武則天)도 이 지역 출신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대체로 강한 개혁 성향으로 기울어져 가는 당 왕실에 참신한 기풍을 불어넣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늘 올랐던 중국 현대문학의 문호 바진(巴金), 국방부장을 역임했던 장아이핑(張愛萍)이 이곳에서 배출된 유명 인물이다. 또 덩샤오핑과 함께 국민당과의 내전 막바지에 충칭(重慶)을 공략해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던 류보청(劉伯承)도 이곳 출신.

쓰촨은 전체 지역의 중간을 흐르는 하천에 의해 둘로 나뉜다. 티베트 고원의 거센 산줄기가 내려와 분지형 대평원을 형성하는 지역의 중심은 청두다.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날씨가 온화해 경제가 발달했다. 쓰촨의 서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티베트 고원과 맞닿아 있다. 이번 대지진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받은 곳이다.

쓰촨의 동부는 산악으로 이뤄져 있다. 서부의 청두 지역에 비해 농업이 발달하지 못해 경제가 뒤떨어진 곳이다. 사람들의 성격은 대개 강하고 모질어 특히 남과의 경쟁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산악에서 단련된 강인한 기질로 인해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인과 장수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다.

성격이 판이한 동부와 서부의 토착인들이 거주했던 이 지역은 진시황의 중국 통일 시기 북방의 한족이 유입되면서 섞이기 시작한다. 특히 『삼국지(三國志)』의 유비와 관우, 제갈량의 촉한(蜀漢) 왕실이 북방에서 이곳으로 유입되면서 남북방의 문화는 크게 합쳐진다. 지금도 이들 영웅이 남긴 족적이 쓰촨성 곳곳에 남겨져 있다.

고추와 산초를 풍부하게 사용해 맵고 쓰린 맛을 내는 ‘쓰촨 요리’는 이곳의 명물이다. 습기가 많은 날씨 때문에 강렬한 맛을 즐기는 현지인의 취향이 만들어 낸 요리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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