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업 “더 이상 물로 보지 마” ‘21세기 블루 골드’ 떠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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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물이 세계 산업계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물 산업이 돈 되는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물을 ‘21세기 블루 골드’라고도 부른다. 글로벌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도움 아래 물 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이 분야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도 서비스 사업을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민간 참여를 허용하면서 기업들의 기술 개발과 축적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인 중국도 상하수도 사업을 민영화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이미 2002년에 21세기 주력산업으로 환경, 그중에서도 물을 핵심으로 지목했다. 그 뒤 하수 처리 및 담수화 설비 분야의 여러 업체를 잇따라 인수했다. 물 공급이 절실한 지역에 당장 물을 공급하는 ‘모바일 워터’라는 개념도 몇 해 전 도입했다. 독일의 지멘스는 2004년 필터를 만드는 US필터를 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물 산업에 뛰어들었다. 물 부족에 시달려온 싱가포르 정부는 2000년대 초 2억 달러를 투자해 아시아 최대의 담수화 공장을 건설했다. 이 공장의 건설과 운영을 맡고 있는 하이플럭스는 현재 담수처리 분야의 세계 선두 기업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세계 물 산업 규모는 3160억 달러(약 313조원) 선으로 추산된다. 이 시장이 커지는 것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수질 오염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가뭄과 사막화도 빨라지고 있다. 자연히 식수와 산업용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과 중국을 비롯한 기존의 물 부족 지역뿐 아니라 북미·유럽·호주·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깨끗한 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물 산업과 시장이 수년 내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돈은 돈이 되는 곳으로 몰린다. 앞으로 물 산업이 돈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다. 미국의 간판급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2년 전 물 산업을 주요 관심 사업군에 포함시켰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2015년까지 국내 물 산업 규모를 20조원 이상으로 키우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기업을 2곳 이상 육성하겠다’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상수도 구조 개편 작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국가가 추진하고, 기금을 만들어 물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현재 세계 담수화 설비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코오롱과 GS건설·삼성엔지니어링도 이제 물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기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상하수도를 비롯한 물 산업을 지금껏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하면서 민간기업들은 필요한 경험을 축적할 수 없었다”는 게 업계의 가장 큰 불만이다. 경국현 코오롱 상무는 “해외 진출을 하려고 해도 수처리장 운영경험 없이는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물 산업=가정과 공장에 안전한 식수와 산업용수를 공급하는 산업을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오·폐수 정화, 상수도원 관리 및 상수도 공급,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담수화 사업을 가리킨다. 생수도 광의의 물 산업이나 업계에서는 식음료 산업의 일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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