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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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02면

10일의 핫뉴스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오찬회동이었습니다. 발표 형식이 특이하더군요. 보통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는 회담은 매우 민감한 사안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양측이 발표할 합의문안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곤 합니다. 그렇게 마련된 합의문을 양측이 동시에 참석한 자리에서 엄숙하게 발표하죠. 진짜 민감할 경우 아예 공식발표를 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날 발표는 박근혜 전 대표 혼자서 의원회관에 앉아 기자회견 형식으로 했습니다. 청와대는 아예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매우 가감 없이 말하는 박 전 대표가 A4 용지에 정리해 설명한 내용을 보면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대충 상상이 됩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밀고 나가기보다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쇠고기 협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민이 납득할 대책이 필요하다.

=국민이 납득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그렇게 노력하겠다.

=복당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개인 생각은 어떤가.

=복당에 거부감은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이 알아서 할 문제다.

=친박연대에 대한 표적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야당 탄압은 정권에 도움 안 된다.

=잘못된 것 있으면 바로잡겠다.

박 전 대표는 마음먹고 조목조목 캐묻는 반면 이 대통령은 특별한 준비 없이 원론적인 차원에서 응대한 느낌입니다. 대통령은 박 전 대표보다 이날 회동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이번만 아닙니다. 광우병 파동과 관련된 여론의 흐름을 분석한 기획취재(5, 6, 7면)를 보시면 대통령의 그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이 너무나 확신에 찬 나머지 여론에 귀를 덜 기울인다고 볼 수도 있겠죠.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무심하다는 인상, 최근 정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혹은 정치행위 자체를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이날 청와대 회동은 한나라당 당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내 갈등을 수습하는 노력은 곧 통치기반을 다지는 첫걸음입니다. 당내 화합을 기반으로 추락하는 지지율을 회복하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힘을 얻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물론 경제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정치는 필요합니다. 정치도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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