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도 무서운데?"“배설물만 주의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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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의 비둘기 ‘구구’군. 요즘 살맛이 안 난다. 아이들도 더 이상 과자 조각을 던져주거나 쫓아다니며 장난을 걸지 않는다. 날개라도 퍼덕일라치면 애고 어른이고 깜짝 놀라 피한다. 이게 다 조류 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비둘기는 괜찮다”는 말도 못 들었나? 그런데 정말 나는 AI에 안 걸리는 거 맞아?

Q=비둘기나 참새, 호숫가 오리도 가까이 올까 겁난다.
A=태국에서 비둘기·참새 등 야생 조류가 AI에 감염돼 죽은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사람에게 감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에선 2004년 3월 경남 양산에서 까치 사체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긴 했지만, 감염원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AI 발생 농장에서 감염돼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 외엔 우리나라에서 AI에 감염된 야생 조류가 발견된 적이 없다. 이번 AI는 육용 오리도 비교적 높은 폐사율을 보이는 등 이전에 발생했을 때와 다른 특징이 있어 방심할 수는 없지만 배설물에만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 충분하다. 특히 비둘기의 배설물엔 다른 병원균이 많으니 AI와 상관없이 조심하는 게 좋다.

Q=우리나라에서 AI가 발생한 것은 올해가 세 번째인데 감염된 사람은.
A=올해만 해도 농장 종사자와 살처분 작업 참가자 등 AI 감염 지역에 노출된 사람이 1만3000여명이나 되지만 아직까지 감염자는 없다. 얼마 전 AI에 감염된 가금류의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한 사병이 AI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으나 일반적인 세균성 폐렴에 걸렸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 군인은 현재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2003, 2006년 AI 발생 때는 살처분 작업 참가자 중 AI 바이러스 항체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라고 할 수 없다. 양성 반응도 당시 투여했던 항바이러스제나 검사 방식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Q=외국에선 죽은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A=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4월 말까지 14개국에서 382명의 AI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108), 베트남(52), 이집트(22), 중국(20), 태국(17) 등에서 241명이 사망했다. 치사율로 따지면 63%가 넘는다. 하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위생이나 의료체계가 좋지 않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 또 감염된 가금류와 직접 접촉하거나, 감염된 고기나 달걀을 날것으로 섭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치게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WHO는 아직 AI가 사람끼리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가족 간에 전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AI와 독감에 동시에 걸릴 경우 바이러스끼리 유전자를 교환해 사람들끼리도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변종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Q=AI도 전에는 ‘조류독감’이라고 하지 않았나.
A=우선 ‘독감(인플루엔자)’을 단순히 ‘독한 감기’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인플루엔자와 감기는 엄연히 다른 병이다. 일부 증상이 비슷하긴 하지만 원인 바이러스가 달라 전염성이나 치명도에 큰 차이가 있다. 특히 해외에서 AI가 발생해도 국내 가금류 업계가 타격을 받았는데 ‘독감’이란 표현이 사람들도 AI에 잘 걸린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서 2005년 공식 용어를 바꾸었다.

Q=예방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나.
A=일본과 미국 등에서 개발된 백신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인체에도 감염되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인 ‘H5N1’은 워낙 변종이 다양해 백신의 효과가 일정치 않다. 중국 칭하이 지역과 동남아 지역에서 주로 검출되는 AI 바이러스도 유전자 서열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AI가 ‘북방형’이 아닌 ‘남방형’이거나 또 다른 변종일 거라고 얘기하는 게 그런 의미다. 사람끼리 전염될 수 있는 새로운 변종이 발생할 경우 기존에 개발된 백신이 얼마나 효력을 보일지 알 수 없다. 현재 유일한 치료제로 꼽히는 ‘타미플루’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이유와 예산 부족을 들어 백신이나 타미플루를 확보하는 데 미온적이다. 백신은 이제야 개발 중이고, 다국적 회사 제품인 타미플루도 140만 명분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도움말 주신 분=김우주(고려대 의대 감염내과)·김재홍(서울대 수의학과)·박승철(삼성의료원 건강의학센터)·최강원(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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