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교외로 나가야만 자연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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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풀 위의 생명들
한나 홈스 지음
안소연 옮김
지호
372쪽, 1만7000원

습관적으로 ‘도시엔 자연이 없어, 삭막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좀 찔릴 만하다. 이 책은 어디론가 떠나야만 자연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자연·환경 전문작가인 저자는 1년 동안 ‘내 집 정원 관찰기’를 써 내려간다. 미국 사우스포틀랜드라는 도시 근교다. 정원이라고 해서 넓고 깔끔한 잔디밭이 아니다. 나무가 보기 좋게 심어져 있고 개 몇 마리가 뛰노는 동화 속 뜰도 아니다. 그저 관찰을 위해 ‘방치’된 작은 숲이다.

잡초가 무성한 풀밭에선 각종 곤충과 식물이 자라나고, 그 사이사이로 동물들이 뛰논다. 얼룩다람쥐·마못·스컹크부터 뒤영벌·바구미·쥐며느리까지, 이런 게 집 마당에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이름 모를 생물이 연이어 등장하다 보니 자연계의 무궁무진한 영역에 한번 더 놀란다. 한마디로 ‘다윈의 잔디밭’이다. 정원은 어느새 훌륭한 정글이자 사파리다.

저자의 관찰 또한 별다를 것이 없다. 애정 어린 시선이 모든 준비의 시작이자 끝이다. 동물들에게 ‘뻔뻔이’ 같은 이름을 지어 붙이고, 먹이를 곳곳에 놓아주되 가두지는 않는다. 테라스에 앉아, 벤치에 누워, 잔디 위를 기어 다니며 각종 곤충과 새와 동물을 만지고 주시한다.

관찰은 하루하루 사소하지만 신기한 자연의 세계를 보여준다. 다람쥐가 어떻게 도토리를 저장하는지, 어떤 동물들이 겨울잠을 안 자는지 등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영국에서 건너온 잔디가 미국에선 얼마나 관리하기 힘든지도 성가신지도 새롭게 아는 사실. 얼룩다람쥐 먹이용으로 단풍나무를 심어야겠다고 말하는 저자에게선 자비심마저 느껴진다.

관찰기는 관찰에서 끝이 아니다. 저자는 커지는 궁금증을 풀어보려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구한다. 심지어 이웃의 정원을 ‘탐방’해 어떻게 잔디를 관리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1년 간의 ‘자연탐험’ 뒤엔 무엇을 얻었을까. 저자는 인간은 가장 강력한 종(種)이지만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 그래서 자연과 교류하려는 열정은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자신도 1년 만에 여러 생명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들에겐 너무 뻔하고 교과서적일 수 있겠다.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도 하다.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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