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시대흐름 못 읽고 그들만의 게임 하고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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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의 행정·연구 시스템이 매우 낙후돼 있으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이를 싹 바꿔야 한다는 조직 진단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인문대는 8일 이 같은 내용의 ‘해외 석학 조직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부터 조직진단 평가단장을 맡은 김성복(사진) 뉴욕주립대 석좌교수가 이날 인문대 교수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인문대가 외부의 평가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당초 서울대 인문대는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SERI)에 조직진단을 의뢰했다. 자연대와 공대가 SERI 같은 전문 컨설팅기관에서 진단을 받은 뒤 변화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SERI 측은 “인문대를 평가할 기준을 찾지 못했다”며 거절했다. 인문대는 ‘평가 전문가’와 ‘인문학 관련자’,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인사를 찾았다. 김성복 교수가 그 조건을 충족했다. 서울대 문리대 출신인 그는 미국에서 40년 넘게 교편을 잡았다. 뉴욕주립대 부총장을 역임해 행정 경험도 풍부했다. 무엇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대학평가위원회에서 버클리대 평가를 지휘했던 것이 그를 선임한 가장 큰 이유였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1월 서울대 인문대를 방문하고 느낀 점은.

“그들만의 게임을 하고 있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대학도 교수도 상아탑에 갇혀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호흡하지 못하는 듯했다. 국제화도 더뎠다. 과 이기주의도 심했다.”

-학과 간 높은 장벽은 인문대의 오랜 관행인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인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또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통합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가 ‘지역 전문가 과정’을 신설하는 것은 좋은 시도다.”


-문제점 알아도 잘 안 바뀌는데.

“서울대의 자율성은 심각히 훼손돼 있다. 이대로 가다간 자율을 줘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될지 모른다. 자율이 없으니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과도한 평등주의에 놀라기도 했다. 리더십도 문제다.”

-리더십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학과별 ‘나눠 먹기’ 식으로 학장이 선출된다. 임기는 2년뿐이며, 그를 보좌할 위원회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 간선을 통한 강력한 학장을 뽑고 임기를 늘려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학장의 성취도를 매년 보고해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간선이 직선보다 좋은가.

“92년부터 한국의 대학은 직선제 실험을 했다. 결과는 ‘패거리주의’와 ‘집단이기주의’를 확인한 것뿐이다. 우리는 총장·학장 직선제에서 ‘민주주의의 타락’을 봤다. 과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학장 선거는 간선으로 가는 게 옳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는 권위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존경할 상대가 없으니, 본받을 상대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해 주는 분위기가 현재 미국의 대학 경쟁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행정시스템 낙후 심각=평가단은 학장 선출 방식 등 시대에 뒤떨어진 인문대의 관행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문대는 지금까지 ‘교황식 선출 방식’으로 학장을 선출했다. ‘학장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면 후보도 없는 상태에서 교수들이 모여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는 방식으로 학장을 뽑았다. 어문계열 학과와 사·철(역사와 철학)계열이 돌아가며 학장을 나눠 먹었다. 평가단은 “외부 인사를 학장으로 영입하는 간접선거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을 논의하라”고 제언했다.

평가단은 인문대의 ‘과 이기주의’도 꼬집었다. 김성복 교수는 “형식적으로 인문대로 묶여 있긴 하지만, 실은 따로 노는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평가단은 인문대의 공동 목표를 세우라고 권고했다. 평가에 참여한 이경묵 경영대 교수는 “인문대 행정조직은 매우 부실하다. 젊은 교수들이 행정에 동원돼 연구 역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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