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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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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사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사표(師表)는 많다. 전북 백산중·고 정진석 전 교장. 그는 해방 후 혼란기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주변을 설득해 쌀을 모았다. 그걸로 창고를 얻어 학교를 시작했고, 평생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았다. 3년 전 타계한 그가 필자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남긴 말은 “난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는 거였다.

경기도 명지외고 전성은 교사는 베테랑 수학교사다. 그는 교직을 떠나 2년 동안 학원가에서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3년여 전 학교로 돌아왔다. 연간 수억원의 돈벌이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오로지 “내가 설 곳은 학교 교단”이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교사의 자리란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다시 태어나도 또 하고 싶은, 억만금을 버리고도 하고 싶은 그 무엇 말이다.

교사가 정녕 그런 거라면 학교를 사교육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움츠러들 일이 아니다. 교사가 공교육 부실화의 원인이란 일부 비난에 마냥 주눅들어 있어서도 안 된다. 사교육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을 바꿔나갈 주체는 바로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는 교사들이 절실하다. 그나마 전국에서 그런 교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데서 한국 교육의 희망을 본다.

서울 용화여고 장동호 교사 등이 그런 예다. 장 교사는 지난해 여러 학교 교사 9명과 뜻을 모아 ‘통합논술 드림팀’을 꾸렸다. 수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학교 교육으로 논술 사교육을 이겨보겠다는 일념에서였다. 올 들어 여러 학교를 돌며 방과 후 논술수업을 진행 중이다. 학생들 반응은 폭발적이라고 한다.

부산지역에선 교사들의 자발적인 학습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수업의 질과 직결되는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교과별 교수·학습방법 개선을 고민하는 교과교육연구 동아리 50개 팀, 논술 지도방법 연구 동아리 71개 팀, 독서토론 동아리 170개 팀, 영어수업 기법 나누기 동아리 182개 팀에서 수천 명의 교사가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 중이다. 

이제 교사들이 서로 잘 가르치기 위한 경쟁에 나서야 한다. 학교를 살리고 공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학교 자율화 조치로 눈앞에 다가온 수준별 교육 확대에 대한 대비가 첫 시험대다. 학교 상황에 맞는 수준별 교육 프로그램부터 교사들이 제대로 만들어 보자. 학교 교육의 본령은 ‘정규 수업’이다. 교사가 정규 수업의 질을 끌어올려 학생 수요를 충족시키면 방과 후 보충수업의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방과 후 보충수업이 꼭 필요하다면 그 또한 교사들이 나서서 해내면 될 일이다.

교사는 교단을 떠나는 순간까지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어선 안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친다는 보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교사는 학생들의 믿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교사에게 달려 있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도 교사의 일이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아니라면 사범대·교육대에 들어갈 때 품었던 초심(初心)을 돌아보기가 너무 미안한 일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 그리고 바로 교사다. 주인인 교사가 열정을 쏟아부을 때 학교가 바뀌고 교육이 바뀐다. 학교마다 제2의 정진석·전성은 교사들이 넘쳐나길 바라는 이유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