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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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스터베이션!』 아리영은 또 한번 놀랐다.
『어떻게 합니까?』 얼떨결에 묻고나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과장은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답했다.
『병원에서 의사의 손으로 하죠.』 진찰실에는 과장과 아리영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남편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거나 과장이 남자의사이거나 했으면 이런 식으로 물어보진 못했을 것이다.허물없이 얘기 나누다 보니 친근감을 느꼈다.
「윤과장」이라 했다.자상함.따스함을 통해 실력이 배어나 보이는 진솔한 인품에 끌렸다.
그러나 저러나 병원 침상에 누워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남편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그는 대체 누구를 생각하며 누워 있을 것인가.혹시 최교수는 아닐까.산장에서의 그 뜨거운 정사가 악몽처럼 가슴을 또 짓눌렀다.
최교수를 생각하며 사정한 정자를 자신의 난자에 받아들인다-만의 하나 그런 일이 빚어진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아무런 육신의 교접(交接)없이 타력(他力)에 의해 수정되는 정자와 난자는 그럴수록 한 점 의혹없는 사랑을 전제로 한 개체끼리여야 한다.그것이 인공수정의 기본 모럴일 것이다.
『어떻든 차트는 마련해 두죠.』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아 하는눈치에 윤과장은 달래듯하며 차트 용지를 펼쳤다.
-김아리영.38세.출산 경력 무.
달필(達筆)이었다.남편의 이름과 나이,결혼 날짜도 적었다.
『나이 차는 한 살,결혼하신지 십년이 넘었군요.월경은 정상입니까?』 『네,대체로 29일만에 나흘 정도씩입니다.』 『생리통은?』 『별로 없습니다.아랫배와 허리가 좀 뻐근한 것 외엔….
』 『유산 경력은?』 『…인공유산을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 『언제 하셨습니까?』 아리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고말했다.이런 일까지 세세히 고백해야 하는 병원이라는 존재가 깎아지른 산비탈 같기만 했다.
『열일곱살 때입니다.』 만년필을 재빨리 놀리던 윤과장의 손이갑자기 멈췄다.
『…부군되시는 분도 알고 계십니까?』 『모를 겁니다.…아마.
』 윤과장은 만년필 뚜껑을 덮고 아리영을 건너다 봤다.착잡하고따스한 눈길이었다.
『자연 유산하신 적은?』 『없습니다.그 후로 임신해 본 적이없으니까요.』 『다른 병력(病歷)은요?』 마음의 병도 병이라면왜 없겠는가.아리영은 고개 저으며 쓸쓸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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