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땐 수입중단” 통상마찰 감수 … 여론 달래기 고육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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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왼쪽에서 둘째)이 7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쇠고기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도중 땀을 닦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정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들끓는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러나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맺은 한·미 쇠고기 협정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협상 대표였던 농림수산식품부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은 6일 “수입 중단은 특단의 조치이자 정무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지만 통상적으로는 할 수 없는 조치라는 얘기다. 결국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전망은 밝지 않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합의된 협상 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 중단’의 근거=지난달 18일 맺은 한·미 쇠고기 협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에서 제외시켜야 조치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수입 중단을 내세우는 것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0조를 근거로 한 것이다.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경우에는 예외적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생검역(SPS) 협정 5조도 정부가 기대를 거는 근거다. 이 조항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도 잠정적으로 수입 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합의 폐기 논란=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협정문이 고시되면 한·미 간에는 WTO의 일반적 규정보다는 양국 간 합의가 우선한다”며 “기존 협정을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을 중단하면 미국은 WTO에 제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WTO에 제소돼 패소하면 보복관세를 물거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정부도 무리수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통상마찰을 각오하고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영훈·손해용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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