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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지도에 일희일비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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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신문을 보면 한나라당.민주당 모두 호떡집에 불이 난 꼴이다. 70%나 되는 민의에 반해 일치단결(?)해 탄핵안을 가결해 놓고, 지금은 막판에 마음을 돌린 소장파 의원 등을 중심으로 곡소리가 퍼지고 있다. "이대로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막막하다"며 말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원문을 읽어 보았다. 정말 탄핵 사유가 되는가. 내 생각은 '충분히 된다'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이 나라가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면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안 원문에 나온 대로 빈번하게 헌법에서 정한 '선거 중립' 조항을 위반했다고 나는 본다. 대통령 측근들과 인척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돼 있는 사실 역시 미국 같은 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탄핵 사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나라는 미국과 다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대통령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선거에 개입했고, 정치인들은 95% 이상이 '도둑놈'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크고 작은 부정축재를 해왔다. 그래서 웬만한 부정에는 매우 관대해진 국민은 말한다. "과연 당신들이 탄핵할 자격이 있느냐?"

이런 현실을 보며 참 아이로니컬하게도 탄핵안을 가결시킨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과정과 목적이 어떻든 간에 그들은 자신들도 지켜야만 하는 '살벌한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이라고나 할까. 국가 최고통수권자에게 탄핵안 원문에 있는 대로의 '법'을 지킬 것을 강요한 사람들이니 앞으로 선거를 치를 때나 정치를 할 때 그들 모두는, 아니 이 땅의 모든 정치인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정도의 법'을 꼭 지켜야만 한다(울며 불며 드라마틱하게 탄핵에 반대한 열린우리당 의원님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더 이상 한나라당 지지자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이 폄훼하는, 탄핵안을 가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적법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혐오하게 된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앞으로 두 당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그 살벌한 기준'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으로 지지해야 하며, 계속 그리 하도록 감시하고 채찍질해야만 한다. 그러면 나도 돌아가리라. 언젠가는 '노빠'보다 더한 절대 믿음을 가지고 한나라당 지지자로 돌아가리라. 그러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지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들이 세운 기준을 지키며 나아가기 바란다. '포퓰리즘' 정치를 흉내내려 하다가는 당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할 수도 있다.

최재인 중앙일보 디지털국회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