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13평의 두 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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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안진(1941~)'13평의 두 크기' 전문

너무 늦은 축하가 미안해서, 양초와 하이타이 등을 잔뜩 사들고 인사를 갔었지. 13평 임대아파트에서 13평 아파트로 이사간 집으로.

쉰셋 나이에 처음 제 집에 살아본 안주인은, 종아리까지 걷어 보이며 불평불만이었지. 석달이나 지났어도 부은 것이 안 풀린다고, 괜히 넓은 집 사서 다리만 아프다고, 청소하기도 힘들다고, 평수는 같아도 크기는 엄청 다르다고.

그녀의 그 어불성설(語不成說)의 화법이 이따금씩 내 두통을 쫓아주며 메아리치곤 하지.



살구꽃이 피었다. 꽃 핀 가지에서 가지 사이로 작은 새가 날아다닌다. 13평 임대아파트에서 13평 아파트로의 이동. 이 행복한 이동을 어떻게 축하해야 할까. 쉰셋에 처음 마련한 집. 그 어떤 고대광실보다 사랑스러운 집. 너무 넓은 그 집을 청소하고 돌아다니느라 3개월째 종아리가 부어 있는 안주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안주인의 볼멘소리가 갓 핀 살구꽃의 연분홍보다 사랑스럽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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