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혼 담은 작품 5개 전시실 채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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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준비 중인 작품 앞에 선 김동기 화백. 그는 “‘명심보감’과 ‘까뮈’‘고도를 기다리며’를 좋아한다”고 했다. [대구보건대학 제공]

“국내 화단은 세계 흐름에 너무 뒤떨어져 있다. 유학은 가지 않았지만 신표현주의가 휩쓰는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겨루고 싶다.”

지난 2일 만난 김동기(47) 화백은 거침이 없었다. 김 화백은 이날 대구보건대학 대구아트센터 인당박물관에 나와 있었다. 6일 자신의 작품전 개막을 앞두고 전시장을 점검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김동기-찬란한 슬픔’전이다. 작가는 이름이 그리 익숙치 않은 편이다. 그는 2001년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초대전 등 5차례 개인전을 했고 국내의 대표적 미술 기획사인 H존 전속작가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김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주된 색은 검정이다. 검정과 흰색으로 어렸을 적 기억과 희망을 말한다. 작가는 중학생 시절 꽃, 특히 백합을 좋아했다. 집안 가득 백합이 자랐고 비가 오면 백합 꽃이 시들지 않도록 비닐을 씌울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그때 꿈은 원예사였다. 추억은 ‘비밀의 화원’이란 연작으로 태어났다. 그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있다.

이번 기획은 대구지역 회화 전시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대학은 지역 유망작가를 위해 큰 돈을 들여 전시를 기획했다. 작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소명숙(52) 인당박물관장은 “5개 전시실의 면적이 1650㎡(500평)이 넘는데 40대 작가 한 사람이 이런 공간을 다 메울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김 화백은 전시장에 작품 700여 점을 가져왔다. 2001년부터 그린 1000여 점 중에서 고른 것이다. 사흘에 한 점 정도를 그린 셈이다. 이 가운데 180여 점이 전시된다. 소품은 없다. 작게는 50호 크게는 200호에 이른다. 1000호 이상 대작도 있다. 인당박물관의 대형 전시장과 궁합이 딱 맞다.

화실은 범물동에 있다. 김 화백은 오전 10시쯤 화실에 나와 보통 밤 12시쯤 집(성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거의 하루 종일 화실에 ‘박혀’ 지낸다. 작업은 하루 평균 13시간. 꿈이 있어서다. 강의 등 다른 일이 생겨도 화실 만큼은 꼭 들러 붓을 잡는다. 화실을 떠나면 두렵다고 했다.

1999년엔 그 이전에 그린 작품 1만6000여 점을 모두 태웠다. 눈에 보이지 않아야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왕성한 창작력은 그래서 가능했다.

◇한글·영문 도록 만들어 해외 보내=대작을 그리면 팔리기 어려운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대작이 아니면 해외 전시장엔 아예 걸 수도 없다”며 “그림을 팔려고 그리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펼쳐야지 구매자를 의식해 소품을 그리는 건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동기 전은 또 해외 전시를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그의 꿈은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다. 인당박물관도 그런 꿈을 후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시 도록을 한글과 영문으로 만들었다. 전시와 함께 미국·유럽 등 전세계 유명 전시관에 도록을 보낸다. 그 가운데 적어도 한 곳은 전시 요청이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안고서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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