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미얀마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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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던 미얀마는 오늘날 깊은 빈곤의 수렁에 빠져 있다. 미얀마 경제는 50년 가까이 계속된 군부 독재하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져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곤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각종 지표들은 이 나라의 보건 및 교육 상황이 최악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새 미얀마는 동남아의 주요 에너지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근해에 자리 잡은 방대한 천연가스 유전 덕분에 미얀마는 이제 상당한 금액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현재 연간 10억~15억 달러(약 1조~1조5000억원)에 이르는 외화 수입의 대부분은 태국에서 들어온다. 미얀마에서 생산된 가스는 마르타반만(灣)으로부터 파이프 라인을 통해 육지로 수송돼 태국 수도 방콕 전력량의 약 20%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벵골만에서 최근 발견된 새 천연가스전은 중국 남부 윈난성에 가스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윈난성에 가스를 수송하려면 미얀마 국토 길이에 해당하는 파이프 라인이 새로 건설돼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설사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환경 및 노동 관련 기준을 맞출 길이 없다 해도 이 파이프 라인은 예정대로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새롭게 축적된 에너지 재원을 고려해 볼 때, 미얀마 정부가 보건·교육 등 투자가 시급한 공공분야에 돈을 쏟아붓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얀마의 군사정권이 고안해낸 기발한 시스템 때문에 천연가스로 벌어들인 외화 중 대부분이 국가 공식 예산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독재 국가들처럼 미얀마도 이중환율 시스템을 갖고 있다. 미얀마의 공식 환율은 키아트(화폐 단위) 대 달러 환율이 6 대 1로 고정돼 있다. 그러나 비공식 시장, 즉 암시장에서의 환율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키아트의 실제 가치를 반영한다.

물론 암시장에서 키아트를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정권에 줄이 닿지 않는 민간인이 외화를 만져볼 꿈이라도 꿀 수 있는 곳은 암시장뿐이다. 이 암시장에서의 비공식 환율에 따르면 키아트의 현재 가치는 달러당 1000키아트 정도 된다.

바로 이 이중환율 시스템 때문에 미얀마의 천연가스 수입을 숨기는 게 가능해진다. 공식 환율을 적용하면 가스로 인한 수입을 실제 가치의 200배 이하로 낮춰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6~07년 미얀마가 올린 천연가스 관련 수입 12억 달러는 이 나라 예산의 공식 계정엔 단지 72억 키아트로 잡힐 뿐이다. 이는 미얀마 공공 지출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하지만 이를 암시장 환율로 계산하면 1조2000억 키아트나 된다. 이 돈이면 미얀마의 재정적자를 일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예산 부족분을 메운다며 돈을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조장했던 정권의 관행도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얀마의 군정 지도자들은 이 많은 돈을 국가 예산에서 빼돌려 어디에다 숨겨놓은 것일까. 일단 이 나라 외환은행의 금고부터 뒤져보는 게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돈을 잘 관리해주는 몇몇 비도덕적인 해외 은행들의 금고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확한 소재가 불분명한 이 돈을 미얀마 군사정권은 어디든 내키는 곳에 쓸 수 있다. 최근 군사정권이 핵 원자로를 짓거나 새 수도를 건설하고, 군대의 봉급을 올려준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절대 받지 못할 유일한 계층이 바로 미얀마의 일반 국민이다. 그 돈만 있으면 민초들의 지긋지긋한 빈곤과 결핍의 삶을 끝낼 수 있을텐데 말이다.

션 터널 호주 매커리대 경제학과 교수
정리=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