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나를 낳으실 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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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버이날, ‘어머님 은혜’와 함께 많이 불리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양주동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운율을 중시하는 시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최근 나온 악보나 책엔 ‘나실 제’ 대신 ‘낳실 제’로 표기돼 있지만 이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니다. ‘적에’를 ‘제’로 줄여 쓸 수는 있지만 ‘낳으실’을 ‘나실’이나 ‘낳실’로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

‘낳다’의 어간 ‘낳-’ 뒤에는 ‘-시-’가 올 수 없다.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용언의 어간 뒤에 붙는 ‘-으시-’와 결합해 ‘낳으실’과 같이 써야 한다. 소리 나는 대로 ‘나으실’로 적어서도 안 된다. ‘낳다’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올 때 ‘ㅎ’ 발음이 안 나더라도 ‘ㅎ’ 받침을 넣어 줘야 한다.

종종 ‘낳다’와 생명체가 태어나다는 뜻의 ‘나다’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두 단어는 쓰임이 다르다. 배 속의 아이·새끼·알을 몸 밖으로 내놓는 걸 이르는 ‘낳다’는 ‘~를 낳아/낳았다’ 형태로 사용하는 타동사지만 ‘나다’는 목적어가 필요 없는 자동사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라셨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나를 낳으셨다”처럼 쓰인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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