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등산길 ‘헉!’ 하면 이미 늦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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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봄철 뇌졸증 발병이 늘고 있다. 등산은 뇌졸중 예방에 좋은 운동이지만 새벽 등산은 피해야 한다.

K씨(55)는 4월 말이 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2년 전 이맘때 떠난 남편 생각 때문이다. 남편은 새벽 등산길에 뇌졸중으로 객사했다. 평소 고혈압 증세가 있었던 남편이 무리하게 새벽 운동을 하다 생긴 일이었다. 이것이 비단 K씨 남편만의 일일까.

흔히 중풍이라 부르는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져서(뇌출혈) 생기는 질환이다. 통계청의 2006년 사망률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61명이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뇌졸중은 암에 이어 사망률 2위의 질병이다.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운동이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갑작스러운 운동은 심장에 무리를 가해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 명지성모병원 조사(2006)에 따르면 뇌졸중은 여름에 비해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발병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절기에 뇌졸중이 발생할 위험은 여름에 비해 25% 높았다.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 또한 높다. 2006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뇌졸중으로 인한 월별 사망률은 7, 8, 9월 여름과 비교해 봄 환절기에 11% 정도나 급증했다.

봄철 환절기 때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이 증가하는 이유는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자율신경계 이상을 초래해 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이다. 혈관이 수축되면,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심장이 정상 혈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하게 된다.

건강한 사람은 혈관이 이완돼 혈압을 조절할 수 있지만 고혈압, 당뇨병 등 심혈관 질환자는 혈관의 탄력성이 떨어져 혈관이 터지거나 좁아진다. 뇌혈관에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중단돼 그 부위의 뇌세포가 죽어 뇌졸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혈압, 당뇨병 등 심혈관 질환자는 환절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특히 새벽 등산 같은 운동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새벽 찬 기운이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액의 혈전 생성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새벽은 인체의 혈압, 맥박이 상승하는 시간대로 하루 중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 높은 때다.

물론 규칙적인 운동은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 예방뿐만 아니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므로 생활 속에서 운동을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고혈압, 당뇨병 등 뇌졸중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미리 체크해보자

운동 중 이런 증상 나타나면 즉시 119

□ 갑자기 한쪽 얼굴, 팔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 한쪽 눈이 갑자기 흐려지거나 안 보인다
□ 다른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이해되지 않는다)
□ 특별한 원인 없이 갑자기 심한 두통이 있다
□ 이유 없이 어지럽다◇너무 땀을 빼고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뇌졸중 예방을 위해서는 중증도 이상의 운동을 권장한다. 중증도 운동이란 일상 생활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강도가 세지만, 아주 격하지는 않은 정도를 말한다.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은 운동을 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 상태와 체력에 맞게 적절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주 4회, 하루 30분 이상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덧옷과 모자는 챙겼는가=운동의 적절한 강도나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체온 유지다. 운동을 하면서 흘린 땀은 체온 저하의 원인이 되므로 땀을 잘 흡수하고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재질의 운동복을 준비해야 하고, 쉬는 시간을 위해서도 보온을 위해 덧옷과 모자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한 운동 후에 사우나를 하거나,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체온만큼 혈압에도 변화가 생기면, 뇌졸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이나 야채를 챙겼는가= 운동 전후에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냥 물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항산화 물질이 많이 들어있는 야채나 과일, 비타민을 섭취하면 운동으로 빠져나간 수분과 영양분을 동시에 채울 수 있어 더욱 좋다.

특히 등산할 때는 수분 조절이 중요한데, 보행 중에 너무 많이 마시면 혈액성분이 희박해져 전신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목을 축이는 기분으로만 천천히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가급적 새벽은 피하라=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계절이 봄이라고 해서 몸도 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몸도 날씨도 조금은 겨울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일교차가 큰 새벽이나 해질녘에는 운동하는 것을 피하고, 온도가 올라가는 낮 시간에 운동해야 한다. 낮 시간에 운동하는 것이 어렵다면 실내 운동도 권장할 만하다.

◇혼자 운동하지 마라= 혼자 운동하게 되면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고혈압, 당뇨병 등의 질병이 있다면 반드시 여럿이 함께 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운동요법과 함께 저용랑 아스피린 요법을 병행하면 봄철 뇌졸중을 더욱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아스피린은 혈관에 혈전(피떡)이 형성되는 것을 억제해 뇌혈관을 포함한 우리 몸속에 피가 원활하게 흐르게 해 뇌졸중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을 막을 수 있다.

아스피린은 100여 년 전 해열 진통제로 바이엘사에서 최초로 개발돼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하루 100㎎의 저용량 아스피린을 투여하면 뇌졸중 발병률을 48% 감소시킨다는 것이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밝혀지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심혈관 질환 예방약으로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심근경색, 뇌졸중 등을 예방하는 ‘필수 의약품’으로 아스피린이 자리잡은 지 오래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홍명기 교수는 “환절기에 무리한 새벽 운동을 하다가 뇌졸중과 급성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며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병 환자들이나 40대 이상 심혈관 질환 위험자는 환절기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새벽 운동을 피하고 낮에 활동하는 것이 좋다.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뇌졸중과 급성심근경색증 등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의와 상의한 후 필요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등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뇌졸중에 걸릴 확률은

경동맥 70% 이상 막히면 위험

뇌 MRA(자기공명혈관조영술) 검사를 받으면 훨씬 정밀하게 뇌혈관 상태를 검사할 수 있지만 검진 목적으로 하기엔 가격이 비싸고 번거롭다.

일반적으로 경동맥 초음파 검사만으로도 뇌졸중 발병 가능성을 70~80% 이상 예측할 수 있는데, 경동맥이 70% 이상 막혀 있을 경우 1년 이내에 20%, 5년 이내 50%가량 뇌졸중이 발병하므로 정기적인 검사를 하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

뇌로 가는 혈액의 80%가 경동맥을 통과하는데, 만약 이곳에 동맥경화가 생겨 혈관이 좁아지거나 동맥경화 부위에서 떨어져 나온 응고된 혈액(혈전)이 뇌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이 발병한다. 따라서 경동맥이 좁아져 있거나 딱딱해져 있는지를 알면 뇌졸중 발병 위험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경동맥 초음파 검사는 검사 전 금식이 필요 없고, 누운 상태에서 목의 경동맥 부위를 초음파로 검사한다. 쇄골 부위에서 귀 밑까지, 양쪽 모두 검사하는 데 보통 20~30분 정도 걸리며, 검사 비용은 8만(의원)~15만원(종합병원) 선이다.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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