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중앙일보 여론조사 30년 하일라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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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中央日報 「창간 국민의식조사 30년 하이라이트」를 올해부터 역으로 추적하면 당시 사회상이 드러난다.올해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집권중반기를 약간 지난 시점.개혁이 더 필요한 분야로여전히 정계가 1위.교육계가 검찰.경찰보다 더 개혁대상이라고 꼽은 것도 특기사항이다.
94년에는 현재 완전히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金大中)총재의 정치행보가 국민 초미의 관심사.
당시 43.9%가 「亞太재단이사장으로 남북통일과 亞太지역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92년은 지방의회의원이 뽑힌지 1년이 되는 시점으로 불과 7.9%만이 그들의 의회활동에 「만족한다」고 인색하게 평가.
91년은 남북합의서 서명이 있었던 해로 56.9%가 「남북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응답.
90년은 韓蘇수교로 북방외교의 쾌거를 이룬 해로 호감가는 외국지도자로 부시(9.3%)를 4배이상 제치고 고르바초프(36.
9%)가 급부상.
89년은 노태우(盧泰愚)대통령 출범 1년째로 그의 인기(16.1%)가 김대중(12.3%).김 종필(9.2%).김영삼(7.
9%)씨를 능가.88년은 全대통령의 5共청문회 증언문제로 시끄러웠던 해.50.0%가 「국회에서 직접 증언」할 것을 요구.
87년 盧대통령의 「6.29선언」을 이끌어낸 세력은 「6.10 대행진」을 주도한 대학생(40.8%).시민(25.5%).야당(7.2%).재야(5.8%)라는 평가가 압도적.결국 민주세력에 대한 항복이었던 셈이다.84년 당시 전두환(全 斗煥)대통령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약속은 54.1%가 「더 두고 봐야겠다」며 반신반의.
82년의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의 근본원인은 「정치부조리」(31.1%)때문이라고 일갈.우리의 숨가쁜 역사를 거꾸로 돌아봤다.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치적 사건별로 볼 수도있지만 생활수준이 달라지는 정도로도 확인할 수 있다.
79년의 조사때까지만 해도「가계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항목」은 「식생활비」였다.
「식생활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77년 49.6%,78년 44.0%,79년 36.4%로 같은 시기의「교육비에 부담을느낀다」는 41.1%,37.5%,35.7%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부터는「교육비」가「식생활비」를 치고 올라오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생활비지출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식생활비는 단순히 교육비에 자리를 내준 정도가 아니다.
83년부터는 불과 10%안쪽의 응답자만이 식생활비에 부담을 느낄뿐이다.
「여유돈을 투자하고 싶은 곳」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변화를 보였다.약 15년전인 81년에는 「은행저축」(51.8%)이 최고의 투자수단이었다.
두번째가 「계」(21.4%)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부동산 투자」(13.1%)라는 인식이 당시에는 적었음을 알수 있고,「주식」에 투자하고 싶다는 응답은 불과 2.4%다.89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부동산」(30.7%)이 「은행저축」(28.8%)을 앞지르고최고의 투자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주식」의 인기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 18.0%가 투자의욕을 보였다.
반면 계의 인기는 급락해 겨우 0.4%만이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92년까지 부동산붐을 타고 부동산투자열기에 불이 붙었던것도 93년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취임해에는 잠시 주춤.
부동산가격 안정덕에 「은행저축」이 「부동산투자」를 다시 앞지르는 기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94년부터 「부동산투자」열기는 다시 「은행투자」열기를앞질렀다.
국민의 의식속에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잠재적 불안심리가 항시 존재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민의 중류층 귀속의식도 꾸준히 증가했다.85년의 계층귀속의식조사에서는 「하류」39.8%,「중류」57.7%,「상류」2.5%로 구분됐다.95년 현재는「하류」가 13.3%로 줄었다.
반면 「중류」78.4%,「상류」8.3%로 증가해 10명 중 8명꼴의 국민이 중류층임을 자임(自任)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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