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대만…'대륙 VS 현지' 지역 갈등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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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 롄잔(連戰) 측이 안정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 사는 황잉잔(黃英展.40.자영업)은 "여야 후보 간의 표차가 미세해 재검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야당의 가두 시위를 비판했다. '누구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천수이볜(陳水扁)"이라고 답했다.

22일 타이베이는 잔뜩 흐린 날씨 속에 이슬비가 뿌렸다. 그런 가운데 야당 연합(국민.친민당)후보인 롄잔 진영은 전국 각지에서 '불공정 선거'라며 지난 20일 밤부터 사흘째 가두 시위를 하고 있다.

둥썬(東森)TV는 "선거 열기를 식히지 못해 불면증에 걸리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일부 환자는 '롄잔이 당선됐다'며 환각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한 중년 여성은 이날 "믿을 수 없다"는 유서를 남겨 놓고 자살했다.

대만 정치권의 불신과 갈등은 이미 치유 불능 상태다. 민진당 지지층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본성인(本省人.대만 본토 출신)인 반면 국민당은 공산당 집권 후 대륙에서 도망쳐 온 외성인(外省人)이 주류다. 陳총통은 본성인, 連후보는 외성인이다.

본성인들은 "외성인들이 대만으로 넘어와 국민당 독재 정권을 세워 대만인들을 무시하고 대만 언어.문화를 말살했다"고 주장한다. 외성인들의 교육.소득 수준이 높은 것도 갈등요인이다. 외성인들은 주로 북쪽에 거주한다. 이 때문에 양측의 갈등은 계층.지역 갈등으로 번지는 추세다.

민진당은 이런 상황을 십분 이용해 '대만 독립론'과 '민주화'를 앞세워 본성인과 젊은층을 파고들어 정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반면 국민당의 비난도 신랄하다. 陳총통이 집권한 뒤 '독립.개혁.민주'라는 구호만 요란했지 양안(중국과 대만)이 등을 돌리고, 경제가 파탄 나는 등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게 없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국민당 편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되면서 사업에 이런저런 지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진당의 친(親)노조 정책 역시 재계의 비판 대상이다.

대만인들은 일반적으로 "陳총통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국민당의 양안 통일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여론이 우세하다.

야당 측은 총통 선거 직후 입법원 의원을 한국에 보내 '총통 탄핵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국민.친민당은 입법원(의회.전체 의석 225석)에서 과반 의석인 1백14석, 민진당은 87석을 갖고 있다.

야권은 陳총통 진영의 선거 조작 사실이 드러날 경우 중도 세력을 규합한다는 전략이다. 탄핵안 통과에 필요한 의석(3분의2 이상)을 확보하면 12월 입법원 선거에서 쟁점으로 부각할 태세다.

왕예리(王業立) 둥하이(東海)대교수는 "12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재검표 정국'으로 맞설 경우 세(勢)싸움이 격렬해져 정국 대치는 장기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타이베이=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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