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재신임 묻는 게 도리” 민주당 “쿠데타적 인사 숙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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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공기관장들의 ‘일괄 사표’ 제출을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이 뜨겁다. “정부의 사퇴 강요”라는 야당과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추려는 조치”라는 여당이 첨예하게 맞서 있다.

기관장들의 ‘사표 바람’은 3월 초 시작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은 자진 사퇴하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후 공공기관장과 공기업 사장 등의 줄사표가 잇따랐다. 잠시 주춤하더니 국무총리실에서 다시 줄사표 바람이 불었다. 조중표 국무총리실장이 지난달 22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19개 국책연구기관장에게 집단 사표를 요구한 이후다. 이 중 18명이 최근 사표를 냈다.

야권은 “도를 넘어선 쿠데타 수준”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가 1일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사표를 내지 않은 이종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 취임한 사람이 임기를 구실로 자리를 지키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건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추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통합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초법적 인사 숙청” “무차별적 정치보복” 등 표현 수위도 높았다.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완장 찬 계엄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라 고 비판했다.

차영 대변인도 “엄연히 임기제가 존재하는데 강압적으로 사퇴시킨다면 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 부대변인은 “기관장 집단사표는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정화 계획에 따라 공무원 5000명을 해직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법적 논란 이전에 정치적인 금도와 상식의 문제”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동관 대변인은 “싱크탱크 역할을 한 연구기관장의 경우 (정권교체에 따라) 정책의 목표나 방향이 전임 정권과 바뀌었다면 재신임을 묻는 것이 정치적 도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갈이 차원에서 사표를 받는 게 아니라 상당수 분들은 검토를 해서 직무수행 등에 문제가 없으면 사표가 반려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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