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친구 삼총사의 ‘22년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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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을 받은 학생들과 함께 한 헥트 교수(왼쪽부터 세번째), 장성도 박사(다섯번째), 손기락 사장(여섯번째). [영남대 제공]

40년 지기(知己)로 지내며 22년간 영남대 신소재공학부에 장학금을 기탁해온 70세 동갑내기 삼총사가 있다.

미국 데이튼대학의 노만 헥트(Norman Hecht)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장성도 박사, 서울에 있는 삼성연마 손기락 사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영남대를 방문, 신소재공학부 3학년 김경재(24)씨 등 3명에게 3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감동적인 사연이 배어 있는 이른바 ‘헥트 장학금’이다.

이 장학금의 사연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헥트 교수는 1986년 봄 친구이자 동료학자였던 장 박사와 함께 영남대를 방문했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뒤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 1기 졸업생인 장 박사와 함께 장 박사의 모교를 방문한 것이다.

이때 헥트 교수는 장 박사의 주선으로 특강했다. 헥트 교수는 이어 영남대가 감사의 뜻으로 전달한 강의료를 거절하며 선뜻 장학금으로 내 놓았다. 아울러 살아 있는 한 매년 같은 액수의 장학금을 영남대에 기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헥트 교수의 이러한 뜻은 장 박사와 손 사장 덕분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장 박사가 친구 손 사장에게 헥트 교수의 뜻을 얘기하며 “같이 장학금을 모아 전달하자”며 의기 투합한 것. 모두 재료공학 박사인 이들은 미국 알프레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68년 첫 만남 이후 조우하는 등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그때부터 매년 4월말이면 300만원의 장학금을 모아 영남대에 전달하고 있다. 평생 미국 대학에서 미국 학생들만 가르쳐온 헥트 교수도 어김없이 같은 날 장 박사에게 돈을 보내 온다.

22년 만에 영남대를 다시 찾은 헥트 박사는 “친구들이 나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이 기여하는 데도 장학금 명칭을 내 이름을 따서 짓도록 했다”며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장학금 기탁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장 박사는 “자신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20여 년간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덕분에 나도 모교를 위해 할 일이 생겼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치켜 세우며 다시 한번 손을 꼭 잡았다.

헥트 교수는 이날 장학금을 전달한 뒤 ‘우주선 보호를 위한 세라믹 타일’이란 주제로 학생들에게 특강했다. 특강에서 그는 “젊은이의 도전 정신과 창의력만이 우주 개발을 위해 인류가 풀어야 할 과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기초과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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