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는 가장 적지만 돈은 제일 잘 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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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말 에쓰오일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사미르 에이 투바이엡. 그는 본사 부사장급 임원으로 승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갔다. 에쓰오일의 대주주인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에선 파격적인 승진 케이스였다. 본사 부장급이었던 그가 한꺼번에 세 단계나 승진한 것이다. 아람코에서 이런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9년이 걸린다고 한다. 에쓰오일 강신기 상무는 “그가 대표를 맡았던 2년4개월 동안 회사의 수익성이 크게 향상된 것이 승진 배경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 4사 중 주유소가 가장 적다. 2월 말 현재 1700개다. SK에너지가 4358개, GS칼텍스가 3379개, 현대오일뱅크가 2285개다. 이런 환경에서도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최고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5조2187억원, 영업이익은 1조737억원. 4사 중 매출액은 3위지만 영업이익은 2위였다. 그렇지만 영업이익률은 7.1%로 단연 1위다. 경쟁사들의 이 수치는 4.5~5.3%다.

그 비결은 고수익 석유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다. 지난해 수출실적은 98억 달러. 전체 매출의 60%를 막 넘었다. 원유를 수입·가공해 국내에 파는 줄 알았는데, 수출이 더 많은 것이다. 국내 4사 가운데 수출비중이 가장 크다. 에쓰오일의 수출 비중은 이미 2003년에 50%를 넘어섰다. 경쟁사들이 20~30%대에 머물던 시기였다.

에쓰오일의 원유정제 능력은 4사 가운데 셋째인 하루 58만 배럴이다. 하지만 고수익을 내는 중질유 분해시설은 독보적이다. 원유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벙커C유를 휘발유·경유 등으로 재처리하는 시설이다. 벙커C유는 통상 원유 가격보다 30~40% 정도 싸다. 값싼 벙커C유를 값비싼 제품으로 바꿔 돈을 버는 것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로 세계 시장에서 경질유와 저(低)유황유 등 고급 제품의 수요가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이미 고도화 설비를 확충한 에쓰오일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하성기 생산부문 수석부사장은 “중질유 분해시설은 누룽지에서 쌀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며 “멀리 보고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올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45.5% 증가한 4조8663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17%가 감소한 3197억원이었다. 업계에선 고유가·환율·운임 등의 악재로 인해 영업이익이 줄어들었지만 경쟁사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좋은 구조라고 말한다.

현재 에쓰오일은 석유화학제품 쪽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원유정제 마진폭이 줄어들면서 미래의 먹거리를 석유화학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김동철 관리부문 수석부사장은 “석유와 화학제품의 가격은 일정한 사이클에 따라 등락한다”며 “지금은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낮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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