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 약, 심장병 예방 효과? 글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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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검사하고 있는 모습. 미국에서는 최근 ‘바이토린 게이트’를 계기로 콜레스테롤 약의 효능에 대해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포토]

 요즘 미국 의료·제약업계는 ‘바이토린 게이트’로 시끄럽다. 약 이름 뒤에 추문을 뜻하는 게이트가 붙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상원은 연구자와 회사 간 e-메일 추적을 통해 ‘바이토린’을 생산한 제약사가 임상 결과를 숨기거나 조작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언론은 바이토린이 지난해 전 세계에서 50억 달러어치 이상 팔린 것은 ‘실제 효과보다 마케팅의 힘’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조사에 착수했다. 내용은 꽤 복잡하다. ‘바이토린 파동’을 계기로 콜레스테롤 약이 꼭 필요한 약인지, 효과는 어디까지인지 점검해 보자.

◇블록버스터 약 독차지=건강진단 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심장병·뇌졸중 등 혈관질환이 우려된다”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다면? 많은 사람이 콜레스테롤 약을 복용해 혈중 총 콜레스테롤이나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 할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프래밍햄 연구가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 데 기여했다. 혈중 콜레스테롤이 150㎎/㎗ 이상이면 이 수치가 1% 올라갈 때마다 심장병 위험이 2%씩 늘어난다는 것이 프래밍햄 지역 주민을 50여 년이나 추적 조사한 연구의 결론이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파이를 엄청나게 키운 것이 콜레스테롤 약이다. 콜레스테롤 약은 출시와 동시에 해당 제약사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블록버스터약은 모두 이 약들 중에서 나온다. 편리성(하루 한 알)·장복성(평생 복용) 등 판매에 유리한 조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 뛰어나=많은 의사가 ‘LDL 콜레스테롤은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FDA의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새 콜레스테롤 약이 임상시험을 통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만 확인되면 시판 허가를 내준다.

사실 콜레스테롤 약들의 ‘수치 낮추기’ 약효는 확실하다.

강남차병원 심장내과 조윤경 교수는 “복용 뒤 6∼8주 후면 혈중 콜레스테롤이 정상 범위까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장병·뇌졸중 등 심각한 혈관질환을 예방하는지는 불분명하다. FDA는 신약 승인 과정에서 새 콜레스테롤 약이 실제로 심장마비 등의 위험을 감소시키는지에 관한 임상 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바이토린 게이트’=콜레스테롤 약으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면 환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심장병 예방 등)이 돌아갈까. ‘잘 모른다’가 답이다. 최근 2년간 발생한 두 건의 사건이 ‘콜레스테롤 약 복용=심장병 예방’이란 등식에 의문을 품게 했다.

첫 번째는 ‘바이토린 게이트’. 이 게이트에 연루된 콜레스테롤 약은 ‘바이토린’과 ‘제티아’다. ‘바이토린’은 ‘조코’(스타틴계 콜레스테롤 약의 일종. 성분명 심바스타틴,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 억제)와 ‘제티아’(성분명 에제티미브. 소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 억제)를 섞어 만든 복합약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500만 명이 복용했으며, 국내에서도 ‘바이토린’‘이지트롤’이란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바이토린’ 개발사인 머크사는 이 약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해 ‘조코’와 비교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는 바이토린이 확실히 조코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값싼 조코에 비해 IMT(경동맥 혈관 두께)를 특별히 더 줄여주지 못했으며 동맥경화반 억제 효과도 확인되지 않았다. IMT가 두꺼우면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며, 동맥경화반은 혈관이란 수도관에 녹이 슨 것과 같아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병 등 혈관질환에 걸리기 쉬워진다.

두 번째는 미국 화이자사가 차세대 콜레스테롤 약으로 야심만만하게 개발 중이던 ‘토르세트라피브’ 중도 하차 사건이다. 1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대규모 임상연구가 2006년 12월 갑자기 중단된 것은 일부 대상자가 약 복용 뒤 심장마비·뇌졸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때도 약을 복용한 사람의 LDL 콜레스테롤은 떨어지고, HDL 콜레스테롤은 올라가는 등 혈중 콜레스테롤은 분명히 개선됐다.

◇콜레스테롤 너무 낮추면 사망 위험 높아져=한강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김민규 교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을수록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지나치게 낮추면 피로감·무력감이 밀려오고,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우며, 심지어 사망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선 혈중 콜레스테롤이 너무 낮으면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일본 순환기관리연구소협의회가 일본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 고령자는 혈중 콜레스테롤이 220 이상, 여성 고령자는 240∼259일 때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운동·식이요법이 우선=콜레스테롤 약을 복용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있다. 운동·식사요법(식사 중 포화 지방·콜레스테롤 섭취 제한)·체중 조절이다.

을지대병원 순환기내과 이경진 교수는 “생활요법으로 3∼6개월간 콜레스테롤 낮추기를 시도해 보고, 성과가 없으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비롯해 심근경색·협심증·당뇨병·비만·가족력·흡연·연령(남자 45세 이상, 여성 55세 이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콜레스테롤 약 처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폐경)엔 자연스럽게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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