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 적 여행 여든까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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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母子의 ‘지구 나들이’
“어떻게 세 살 된 아이와 둘이서 오지로 배낭여행을 다녔냐”고 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Why not?, 왜 안되느냐”는 것이다. “아이는 한국에서나 아프리카에서나 똑같이 울고 웃죠.” 아이의 걸음에 맞춘 여행은 오히려 느긋하고 풍요롭다. 엄마에게는 ‘느림의 미학’을 일깨우고, 아이에겐 시나브로 삶의 면역력을 키워 준다.


   아들과의 여행을 통해 여행작가가 된 주부 오소희(36·서울 종로구 부암동)씨는 어린 아들과 단 둘이서 터키·라오스·아랍을 누비고 다녔다. 아들(오중빈·7)이 만 세살 때 스스로의 힘으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터키와 아랍 여행 때는 아들을 데리고 다녔지만 중빈이가 다섯 살 되던 라오스 여행부터 엄마와 아들은 여행친구가 됐다. 문명보다는 자연이 가까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아이는 머리보다 가슴이 훌쩍 자랐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도 자랐다고 오소희씨는 고백한다.
   “아이가 집안의 죽은 장난감이 아닌, 세상 밖에 널린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놀기를 바랬죠.” 올 3월 중빈이는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가까스로 참석했다. 입학식 이틀 전에야 아프리카에서 새까매진 얼굴로 돌아왔기 때문. 아동용품이나 휴대폰, 호신기기 등을 챙기며 입학준비에 바쁜 엄마들과는 달리 오소희씨는 느긋했다. 준비할 것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라고 믿었다.
   2004년 터키를 시작으로 2005년 시리아·레바논·요르단, 2006년 라오스, 2007년 미얀마, 그리고 2008년 동아프리카까지 오소희씨 모자의 여정에는 거침이 없었다. 여행기간은 한달에서 길면 사십일. 미리 준비된 여정이나 목적은 없었다. 처음엔 아빠와 셋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지만 직장에 매여있는 아빠를 기다리며 미루자니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엄마 혼자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오지’라고 일컫는 곳을 여행하기란 언뜻 생각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 전 아프리카 여행에서 중빈이가 고열을 앓자 말라리아에 걸린 줄 알고 펑펑 울며 자책한 적도 있다. 알고 보니 감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중빈이는 고대하던 침팬지를 만났고, 아프리카 초원에서 검은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뛰놀았다.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뭣하러 힘들여 여행을 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오씨의 생각은 다르다. “여행 중 아이의 가슴 속에는 삶을 대하는 그만의 방식과 태도가 켜켜이 쌓여 갔을거예요.” 어린이 유괴 사건으로 흉흉한 요즘, 어떤 최첨단 장비도 아이를 완전하게 지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험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견디는 힘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
   “중빈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It’s OK, 그래 괜찮아”였어요. 삶에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게 하고 싶어요.”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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