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매듭과대전환>3.하버드포럼-주제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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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5년9월 한국에 상륙한 존 하지중장은 일본으로부터 난파선과같은 경제를 넘겨 받았다.당시 한국의 상황은 구소련의 붕괴이후동유럽 국가들과 매우 흡사했다.전시 총동원체제는 경제에 심각한후유증을 남겼다.민간경제 네크워크는 완전히 재구축돼야 했다.일본과 만주,그리고 북한지역으로부터 원료공급이 끊기면서 공장들은가동중단 상태로 빠져들었다.
금융시스템 또한 엉망이었다.인플레는 통제불능 상태였다.8월15일이후 미군이 도착한 9월6일까지 3주간 일본은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내 유통시켰다.해방후 불과 2개월반동안 한국의 통화공급은 두배로 늘었다.
미군정청의 관심은 치안문제에 집중됐다.미국은 일본인들이 기존식민통치기구를 계속 활용해 경제 및 산업분야의 혼란을 막아주길희망했다.그러나 이는 한국민들을 분노시켰다.독립국가의 건설을 열망한 한국민들은 대대적으로 반발했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하지는 맥아더에게 계획의 취소를 요청했고 미국은 급기야 한국통치에서 일본인들을 배제키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하지는 우왕좌왕했고 그에 대한 한국민들의 불신은 증폭됐다.
그러나 일본인들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일본인들은 금융과 산업을 독점적으로 주물러왔기 때문에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경제재건자체도 힘들었기 때문이다.하지의 결정은 북한에 진주했던 소련군의 합리적 접근과 좋은 대조 를 보였다.
소련은 약1천명의 일본인을 설득,경제재건사업에 투입했다.그들에게「노동영웅」이란 칭호와 함께 북한인들보다 최고 2배나 많은 급여가 지급됐다.이들 일본인이 전후 북한의 경제발전에 초석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인들로부터 하루아침에 남한 산업의 90%를 넘겨받은 미군정청은 이를 적절히 경영할 능력이 없어 갈팡질팡했고 이에따라 경제는 혼란과 후퇴를 거듭했다.결국 48년8월 군정청은 상처투성이의 경제를 대한민국 정부에 넘겨주는 것으로 역 할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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