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은 지난해 7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으나 “이 나이에 항암치료에 매달려 남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한 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요양해 왔다. 지난해 6월 본지 인터뷰에서 “살아보겠다고 날마다 약 먹고 병원 가고 하는 거 내 생명을 저울질하며 사는 것 같아서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선생이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 땅과 생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다. 삶을 연장하는 데 연연하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것이다. 선생은 투병 중에도 예의 꼿꼿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뭔가 많은 것을 해내려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다 가라’고 말하셨다. 그 연세에도 건물 앞 비포장 길에 돌길을 만들고, 기와 한 장 한 장을 직접 쌓아 담을 만드셨다.”(소설가 백가흠)
선생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월간 현대문학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 시 세 편을 발표해 문단을 놀라게 했다. 현대문학 양숙진 주간은 “올해 초 선생님께서 ‘써 둔 시가 있다’며 원고지에 손으로 쓴 시 세 편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후배 작가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선생의 쾌차를 기원했다. “그간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던 만큼 이번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소설가 은희경) “문화관에 머무는 작가들이 먹을 반찬까지 직접 챙겨 주셨던 선생님이셨다. 아직 우리 곁에 계셔야 할 분이고, 모두가 기도하고 있으니 무사히 고비를 넘기실 거라 믿는다.”(시인 김선우)
이에스더·이진주·김진경 기자
◇박경리=1926년 경남 통영 출생. 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며 등단.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성녀와 마녀』등 수많은 작품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