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토지’ 박경리 선생님 이번에도 툭툭 털고 일어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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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증세로 입원 치료 중인 『토지』의 작가 박경리(82·사진)씨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달 4일 의식을 잃어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한 박씨는 중환자실과 집중치료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한때 의식을 회복해 사람을 알아보는 등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다시 의식을 잃어 현재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병실에서 박씨를 돌보고 있는 딸 김영주(토지문화관 관장)씨가 병문안을 거절하고 있지만 박완서·오정희씨를 비롯한 문인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쾌유를 비는 난을 보내오기도 했다. 25일 오후 병원을 찾은 송호근(서울대 사회학) 교수는 “생각보다 상태가 위중해 인사를 해도 전혀 듣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며 “코에 호스를 꽂고 간신히 숨만 쌕쌕 몰아 쉬는 선생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박경리 선생은 지난해 7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으나 “이 나이에 항암치료에 매달려 남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한 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요양해 왔다. 지난해 6월 본지 인터뷰에서 “살아보겠다고 날마다 약 먹고 병원 가고 하는 거 내 생명을 저울질하며 사는 것 같아서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선생이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 땅과 생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다. 삶을 연장하는 데 연연하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것이다. 선생은 투병 중에도 예의 꼿꼿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뭔가 많은 것을 해내려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푹 쉬다 가라’고 말하셨다. 그 연세에도 건물 앞 비포장 길에 돌길을 만들고, 기와 한 장 한 장을 직접 쌓아 담을 만드셨다.”(소설가 백가흠)

선생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창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월간 현대문학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 시 세 편을 발표해 문단을 놀라게 했다. 현대문학 양숙진 주간은 “올해 초 선생님께서 ‘써 둔 시가 있다’며 원고지에 손으로 쓴 시 세 편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후배 작가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선생의 쾌차를 기원했다. “그간 건강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던 만큼 이번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소설가 은희경) “문화관에 머무는 작가들이 먹을 반찬까지 직접 챙겨 주셨던 선생님이셨다. 아직 우리 곁에 계셔야 할 분이고, 모두가 기도하고 있으니 무사히 고비를 넘기실 거라 믿는다.”(시인 김선우)

이에스더·이진주·김진경 기자

◇박경리=1926년 경남 통영 출생. 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며 등단.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성녀와 마녀』등 수많은 작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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