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올림픽이 급하다’ 한발 물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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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이 25일 달라이 라마 측과 대화 의사를 밝혀 티베트 사태가 40여 일 만에 해결될 실마리가 열렸다.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중국이 한발 물러난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달라이 라마 측을 “분열주의자” “폭도”라 비난하며 대화를 거부해 왔다. 그러면서 티베트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해외에서 봉송 도중 곳곳에서 중국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저지당하는 수난을 당했다. 중국 내에선 티베트 사태를 비난하는 서방 언론에 반발하는 등 중국 민족주의가 거세게 타올랐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대화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유럽 정상들 사이에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 움직임이 더욱 확산되자 중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선 유화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올림픽이 개막식부터 누더기가 될 경우 중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회담 직후 대화 재개 방침을 밝혔다. 바로수 위원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티베트 사태와 관련, “긍정적인 진전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프랑스·독일 등 서방국가들은 이날 중국의 대화 방침을 환영했다. 고든 존드로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대화 소식을 듣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중국에 매우 비판적이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괄목할 만한 진전”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티베트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티베트 망명정부와 여섯 차례에 걸쳐 티베트 자치권 부여, 달라이 라마 등 망명 티베트인들의 복귀 등을 놓고 비밀 협의를 벌여왔지만 소득은 없었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 측의 티베트 자치권 확대 요구를 독립 전 단계로 간주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혈 시위 사태를 계기로 양측의 간격이 더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일단 대화의 문이 열린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번에도 양측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티베트 사태는 계속 여진을 갖고 중국의 골칫덩이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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