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높이의 동부, 마침내 별을 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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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원주 동부 선수들이 삼성을 꺾고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동부는 종합 전적 4승1패로 삼성을 물리치고 3년 만에 챔프 자리를 되찾았다. 아랫줄 왼쪽에서 넷째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다. [연합뉴스]

경기 종료 4분여를 남기고 강대협의 3점슛이 림에 꽂히자 원주 동부 선수들은 승리를 예감한 듯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종료 때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 3점슛으로 점수는 84-65로 벌어졌고, 서울 삼성은 더 이상 추격할 힘을 잃고 말았다.

6개월여를 달려온 2007~2008 SK텔레콤 T 프로농구가 동부의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동부는 25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7전4선승제) 5차전에서 ‘트윈타워’ 김주성(29점·8리바운드)과 레지 오코사(17점·14리바운드)의 활약을 앞세워 삼성을 90-74로 물리쳤다. 4승 1패로 승부를 마감한 동부는 TG삼보 시절을 포함해 통산 세 번째이자 2004~2005년 시즌 이후 3년 만에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우승 상금은 1억원이다. 양팀 가운데 가장 많은 29득점을 기록한 김주성은 기자단 투표에서 67표 중 만장일치로 두 번째 챔피언 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챔피언 반지는 이번이 세 번째다. 김주성은 또 올스타전과 정규시즌에 이어 챔피언 결정전 MVP까지 독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자신에게 최고의 해로 만들었다.

플레이오프에서 전승으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한 삼성은 동부의 장신 벽을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승부는 초반에 갈렸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은 긴장했고 1쿼터에만 범실 6개를 저지르며 자멸했다.

동부는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카를로스 딕슨(17점)과 김주성이 나란히 9득점을 올리며 1쿼터에 28-11로 앞섰다. 하지만 2쿼터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챔피언 결정전 시작부터 침묵을 지키던 삼성 주포 이규섭(17점·3점슛 3개)의 슛이 터졌고 강혁까지 힘을 보태 2분여를 남기고 33-44, 11점 차로 점수를 좁혔다. 여기다 동부 딕슨이 2쿼터 종료 1분6초를 남기고 볼 다툼을 하다 왼쪽 무릎을 잡고 쓰러진 뒤 업혀 나갔다. 3쿼터에서도 동부는 3분50초를 남기고 다시 이규섭에게 3점포를 맞고 62-56, 6점 차로 쫓겼다.

하지만 삼성은 잇따른 범실과 무리한 공격으로 더 이상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전창진 감독은 “어느 해보다 올해 우승은 남다르다. 일년 동안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묵묵히 따라와 준 선수들이 고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우승을 계기로 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승진 기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그림자 후원’
관중석서 경기 보고 전화로 격려해 주고 선수 투자엔 과감히

챔피언 결정전 5차전이 열린 25일 잠실실내체육관.

동부의 우승이 확정되자 구단주인 김준기(64) 동부그룹 회장이 플로어로 달려 나왔다. 이어 선수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려 주며 노고를 치하했다.

김 회장은 VIP석 대신 관중석을 주로 찾는다. 이날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자신이 온 것을 알면 “선수들이 부담을 느낀다”며 극구 본부석을 사양했다. 김 회장의 농구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주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한다. “사업상 빡빡한 스케줄이지만 가능하면 동부 경기는 다 보려고 하신다”고 구단 관계자는 말한다. TV중계를 보지 못했을 경우에는 녹화 테이프를 통해서라도 동부 경기를 본다고 한다. 전창진 감독은 “경기장에 오지 못할 때는 경기 후 전화로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 선수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고 고마워했다.

김 회장의 농구에 대한 애정은 실력으로도 입증된다. “2005년 10월 창단식에서는 NBA 선수들을 거론하며 농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동부 한순철 사무국장은 귀띔했다.

이런 김 회장의 열정과 관심이 시즌 통합우승이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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