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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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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개그는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讀法)이다. 요즘 그 바닥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KBS-2TV의 개그콘서트 중 ‘달인’ 코너다. 세간의 이목을 끌어 모으는 이 코너에 등장하는 달인은 엉뚱하고 뻔뻔한 거짓말꾼이다.

그 달인을 소개하는 대목이 우스꽝스럽다.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자를 만난 적이 없는 ‘부킹’ ○○○ 선생”이라는 소개를 받는다. 물론 자신의 이력을 거짓으로 과장한 것. 여자를 만난 적이 없기는커녕 틈만 나면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엉큼한 인물이다. 또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신 ‘개안’ ○○○ 선생”이라는 소개를 받지만 속내는 영 딴판이다. 억지로 눈을 치켜뜨지만 손동작으로 눈감는 순간을 가리고 넘어가는 얼렁뚱땅식 캐릭터.

가진 것은 없으나 남에게 뭔가를 내세우고 싶어 하는 거짓과 위선의 인물. 정해진 능력 검증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마침내는 진상이 드러나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퇴장하는 사람이다.

잘나가는 한국의 개그코너에서 인상이 망가지고 있지만 달인은 그리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요즘 의미의 달인이라는 단어는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어느 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실력이 출중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자(漢字) 단어가 그렇듯이 그 원전은 중국이다. 『좌전(左傳)』에 달인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성인으로서 덕을 갖췄으나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의 후손 중에는 도리에 통한 사람이 반드시 나올 것(其後必有達人)”이라고 말했다. 철리를 깨달은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통한다는 의미의 ‘통(通)’과 어디에 이른다는 새김의 ‘달(達)’은 뜻이 같다. 세상의 물정을 꿰뚫고 사람 사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나중에 중국인들은 그 뜻을 ‘통정달리(通情達理)’로 정리했다. 결국 속 깊게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를 기(技)와 예(藝)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으로 정리한 것은 일본이다. 실질적인 능력을 중시하는 그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곳에서 다시 탄생한 달인이라는 단어가 한국은 물론 대만과 홍콩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일본 문화력의 깊은 힘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정치판에는 가짜 달인들이 늘 넘친다. 총선에서 드러난 뉴타운 공약 남발도 그렇고, 당선되자마자 구설에 오르다가 곧 구속까지 당하는 비례대표 당선자들과 그 배후의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한번 뭔가를 내질러 정치적 효과를 거두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다. 뻔히 내다보이는 거짓과 위선에 대한 비웃음. 개그코너 ‘달인’이 유행하고 인구에 회자하는 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