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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길로…] 3. 현각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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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원주시립복지원장을 맡고 있는 현각(53) 스님은 6년 전 일을 잊을 수 없다. 부랑자.행려병자 등을 돌보는 복지원에서 만난 '칠성이'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름도 없어 칠성이로 불렸던 30대 초반의 그는 임종 순간에 처절한 울음을 터뜨렸다. 일반인처럼 표현은 하지 못했으나 죽음 앞에선 보통 사람과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최후에는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은 것 같았어요. 종교인이 할 일을 재차 절감했습니다."

스님은 잠시 숨을 골랐다.

"약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비애감은 그들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어도 행복해해요. 세상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합니다. 그게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약한 자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게 종교의 임무입니다."

스님은 애초 복지 분야에 큰 관심이 없었다. 1986년 강원도 영월군 보덕사 주지를 그만두고 원주에 와서 포교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도시의 빈곤'에 눈뜨게 됐다. "불교가 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앞으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선배 스님의 말도 큰 자극이 됐다.

스님은 91년 원주복지원을 시작으로 현재 서너 곳의 복지 시설을 책임지고 있다. 치매노인을 보살피고 노인대학.어린이 공부방도 갖춘 원주 명륜종합복지관, 몸이 불편한 아이.노인을 돌보는 강릉 장애인복지관은 정부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았고, 고아.장애인 40여명이 생활하는 충주 진여원은 스님이 직접 꾸려가고 있다. 또 장애인들이 모여 일하는 감자떡 공장도 있다.

"고마운 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팔순 잔치 때 들어온 축의금 전액을 보내주신 할머니가 계세요. 원생들과 함께 환갑잔치를 연 분도 있습니다."

"69년 월정사로 출가했으니 인생의 반 이상을 절집에서 보냈네요. 도(道)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달았다고 할 순 없어도 단지 하나 확신하는 게 있습니다. 나만의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 게 도에 이르는 관문이지요."

스님은 한국 불교의 전통인 선(禪)에 대해 한마디 했다. 참선이 사람을 담백.기품있게 해주는 건 사실이나 절대 선수행을 벼슬처럼 생각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고 했습니다.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시에 잘돼야 한다는 뜻이죠. 이게 불교정신입니다."

그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불교가 최근 복지분야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현실을 환영했다. 하지만, 한가지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사회복지를 얘기하는 사람이 늘었으나 아직도 포교를 염두에 둔 행동이 많습니다. 불교를 위한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복지 자체를 생각해야 해요. 그게 불국토로, 그리고 기독교의 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종교가 자기 입장만 내세우면 다른 종단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복지사업은 그런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스님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불교를 강조했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종교가 찾아나서야 한쪽에서 웃음을 터뜨릴 때 한쪽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033-747-1795.

글=박정호,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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