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식물 처리기’ 유럽 신도시에 깔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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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자(54·사진) 루펜리 사장이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로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국제 발명전’에서 ‘최고 여성 발명가상’을 받았다. 85개국 대표들이 참가한 전시회에서 거둔 성과다. 제네바 전시회 본부는 “음식물쓰레기의 비용 절감과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고 평했다.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고, 올해는 국제특허를 따내는 등 그에겐 겹경사가 일어난 셈이다.

그는 그러나 이런 경사에도 기쁨보다는 비장함을 표했다. “올해는 유럽 진출 원년”이라며 “유럽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미 친환경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인 ‘아일랜드 그린시티’에도 동참키로 했다. 이 신도시에 지어지는 모든 주택(1만 가구)의 납품 계약을 따낸 것이다.

그는 공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하는 중소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엔 일본 QVC 홈쇼핑에서 방송 25분 만에 1500대 제품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세를 몰아 이달 일본 최대 할인점 자스코 4000여 매장에 진출한다. 또 요미우리·일본TV 전파도 탈 예정이다. 중동 시장에도 진출키로 했다. 올해 제품 2만 대를 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카타르 등에 공급키로 한 것이다.

이 사장은 원래 전업주부였다. 외환위기 당시 남편 회사가 부도를 냈고, 이 회사에 보증을 서준 친정식구들까지 피해를 보면서 사업가로 나선 것이다. 49세 때의 일이다. 그는 “베란다에서 시래기를 정리하다 문득 이를 말리면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무작정 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부도난 남편 회사 한구석에 연구실을 차리고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를 하다 그는 음식 냄새를 처리하지 못해 벽에 부닥쳤다. 그는 탈취 기술을 가진 일본 회사(마루이치)를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국·찌개 등 국물이 많은 우리나라 음식 냄새를 빼는 건 만만치 않았다. 그는 밤낮으로 실험을 거듭한 끝에 ‘공기 순환 건조 방식’ 기술을 만들어냈다. 온풍 건조식과 활성탄을 이용한 필터식 음식물 처리기로 국제특허를 받았다. 음식물쓰레기를 바짝 말려 그냥 태워버릴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철학을 ‘무데뽀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는 물건을 팔려고 일면식도 없는 아파트 건설사 사장을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다. 그 사장 집 주방을 교체해주면서 써본 뒤 건설 중인 아파트에 제품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결국 수주에 성공했다. 이후 포스코·롯데·주택공사 납품으로 이어졌다.

이 사장은 “이제 말린 음식물쓰레기를 재활용해 에너지로 사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전해 성공한 만큼 두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이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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