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遺骸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전쟁의 역사를 훑어보면 적대국의 병사를 사로잡는 경우 그 포로들의 쓰임새가 아주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고대국가들은 전쟁포로들을 주로 희생제물로 삼았다.초기 메소포타미아의 비문(碑文)엔 성전(聖殿)의 사제(司祭)들이 전쟁포로들을 자주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많이 나타난다.그리스.로마시대도 마찬가지였다.트로이전쟁에 대한 호머의 기록에는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가동료 파트로클루스를 화장(火葬)하면서 포로 12명을 함께 단에올려 불태웠다고 전한다.
포로를 희생제물로 삼은 데는 승전(勝戰)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었다.기원전 5세기께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살라미스전쟁 때는 그리스의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 포로 3명을 제물로 바쳐 승전을 기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대 중 국에선 한꺼번에 6백명의 포로가 신을 섬기는 의례(儀禮)에서 희생된 일도있다. 현대전에 있어 포로의 쓰임새는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가장 흔한 것이 전쟁 당사국들간의 포로교환이고,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때로는 상대국 전사자의 유해(遺骸)를 송환하는 데도 이런저런 조건들이 뒤따르는일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도적 차원에서의 문제다.인간의생명이 존엄한 것처럼 죽은 자의 육신도 정중하고 경건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사자의 유해 송환문제를 놓고 당사국간에 흥정을벌인다는 것은 인륜(人倫)에 벗어나는 일임에 틀림없다.한데 6.25당시 사망한 1백31구의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대가(代價)가 적으니,많으니 북한과 미국간에 줄다리기가 한창이라는 소식이다.물론 유해를 찾아내 발굴하고 송환하는 데는 다소간의 경비가 필요할 터인즉 그 비용을 받는 쪽에서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고,그같은 전례는 월남전에서의 미군 사망자 송환 때도 있었다.
유해 1구에 2천달러의 경비를 지불 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측이 제시한 1백만달러가 적다며 북한이 3백50만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객관적으로 따져도 이 액수는 단순한 송환 경비로 보기는 어렵다.유해값을 더 받겠다고 흥정하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아무리 경제사정이 딱하더라도「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는 예부터의 명성을 부끄럽게 해서야 되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