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명도"북핵"증언규명돼야 치명적인"전략불균형"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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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이란 두개의 얼굴을 가진 실체다.언젠가 더불어 통일을 이뤄야 할 동족집단인 동시에 통일의 그날까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할 위협세력인 것이다.따라서 북한에 대해 문호를 개방해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쌀지원 문제에서처럼 원 칙없는 대북(對北)양보로 북한이 우리를 우롱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곤란하다. 안보차원에서의 대북 전략균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유지돼야 한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과거핵 미스터리」는 겉하기식핵해결이 남긴 함정이라 할 만하며 강명도(康明道)씨의 증언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과거핵」이라 함은 북한이 비밀리에 만들어두었을 지도 모르는핵탄,핵탄을 만들기 위해 숨겨둔 플루토늄 또는 비밀 핵시설 등을 의미한다.지난해 내내 북한과 핵협상을 벌였던 미국의 로버트갈루치 핵대사는 『과거핵 규명없는 핵타결은 없 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한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평양에는 『지금부터 사찰을 받고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과거핵은 불문에 부치겠다』고 속삭여 주었다.이렇게해서 타결된 것이 지난해 10월21일 北-美 제네바 핵합의다.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내에 붙들어 둠으로 써 세계 핵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국익계산이 우방인 한국의 안보이익을깔아뭉개는 순간이었다.
물론 과거핵의 실존여부에 대해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1~2개의 핵탄 보유」를 흘린 美중앙정보부의 견해도 있고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를 반박한 국무부의 견해도 있다.국내에서 필자처럼 북한이 수개의 핵탄을 보유한 것으로 단정하는 전문가도 있고,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단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전략적 우위 및 외교적 지렛대가 될 수 있는 북한의 과거핵문제를그냥 넘길 수도 있는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어떤 나라든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면서 이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경우란 없다.따라서 일정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핵개발 심증을 굳히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며,북한의 경우 이러한 조건들이일찌감치 충족됐다.
지난해까지 북한이 가동 또는 건설중이던 원자로들은 모두 핵탄제조용으로 적합한 흑연가스로였고,상호 재처리시설을 보유하지 않겠다고(핵탄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92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플 루토늄을 생산했음이 확인됐다.북한의 핵개발 계획은 중국.러시아 등과의 동맹력이 약화되면서 느끼게된 불안감이 충분한 동기가 된다.
또 핵탄을 실어보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린 나머지 이미 괌과 오키나와를 사정거리내에 두는 중거리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지않은가.요컨대 북한은 기술수단.동기.징후.투발수단 등 모든 조건들을 충족한 상태인 것이다.필자가 93년 3월 15일 국회증언에서 「북한핵보유 기정사실화」를 주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북한의 과거핵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전략불균형」을 의미한다.따라서 북한의 비밀 군수공장이 밀집한 묘향산 지역에서 핵시설로 추정되는 시설을 봤다는 康씨의 증언은 그냥 넘길 성질이아니다. 동독을 흡수한 서독,소련의 군비경쟁 포기를 끌어낸 미국 등 어떤 경우를 보더라도 전략적으로 열세에 있는 쪽이 우위에 있는 쪽을 굴복시키지는 못한다.과거핵에 더해 다량의 미사일과 화생무기를 쌓아놓고 있는 북한을 상대하는 우리의 자세 는 어떠한가.플루토늄 보유금지,사정거리 1백80㎞ 이상의 미사일 개발금지 등의 족쇄를 찬 채 어떻게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핵문제 전문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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