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東方無禮之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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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가 잘 살게 돼서인지 외국서도 우리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선진국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라는 권유가 들어오고,이제는 동남아.유럽의 백화점에서도 우리말 안내문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배고픈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 는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번 여름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여행을 다녀왔다.그러나 외국여행을 다녀본 사람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같다.비행기에서부터 우리의 참모습을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통로마다 짐칸에 쑤셔넣지 못한 여행가방들이 쌓여 있고,급조된단체여행「친구」들끼리 떠드느라 짐때문에 막힌 통로에 서서 망연해하는 다른 손님들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가히 시장바닥이다.비싼 비행기값 냈으니 내마음대로 한다는 태도는 어른이나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승무원들의 기내방송과 간곡한 부탁을 신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흔들리는 비행기속에서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출구로 뛰어 나간다.우리들이 타고 내린 비행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비행기를 탄 사람들 같다.
경험있는 승무원들도 되도록이면 한국노선을 피한다.그래서 한국노선에「험지수당」을 주는 항공사도 있다고 한다.
못살던 시절 우리는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았다.한 소리 할때마다 제대로 된 소리인지 눈치를 보고,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제대로 된 걸음인지 주위를 살폈다.그동안 못살아서 「함부로 할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그래서인지 이제는 남을 의식하는 것을「못사는 자의 비굴」로 치부한다.
남의 입장이나 편의는 안중에도 없다.
만약 우리가 선진국대열에 끼게 되면 2차대전후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탈바꿈한 첫번째 사례가 된다.자랑스러운 일이고 그래서 많은 개도국과 선진국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걸맞은 「새마을운동」이라도 벌여야될 것 같다.그렇지 않고서는 「양반부자」 新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아니라「벼락부자」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될 판이다. 옛 새마을운동이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였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도 우리와 같이 위할줄 아는 국민으로 다시태어나기 위한 새마을운동이다.
金廷洙〈本社전문위원.經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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