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멸치잡이에도 시장원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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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넉넉지 못한 세월을 살아온 우리에게 멸치볶음과 도시락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추억속의 멸치가 불현듯 어민들의 군산항 시위사건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시위에 참여한 2백여척의 어선은 모두 경남에 연고를 둔 배들이다.
일부 사람은 영.호남의 멸치전쟁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멸치를 둘러싼 어민들 사이의 갈등은 간단하게 넘겨버릴문제가 아니다.밥그릇 싸움과 같은,강건너 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건강과 이익에 직결되는 문제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정치망과 같은 재래식으로부터 현대화된 설비를 갖춘 기선권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이번 시위는 기선권현망의 어업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정부는 지난 82년 수산자원보호령을 이용해 조업구역을 1구역경남,2구역 전남,3구역 전북연안으로 결정한 바 있다.정부가 허가를 내준 기업은 모두 1백3개다.그 중에서 83개 기업이 제1구역인 경남연안,그리고 13개 기업이 전남연 안에서 현재 멸치를 잡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경남연고의 기업들은 그동안 경남지역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공단,항만,매립,그리고 양식장의 확대로 말미암아 과거에 비해 멸치를 잡을 수 있는 사업영역이 50% 정도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제1구역인 경남지역에는 83개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그런데 제2구역에는 불과 13개 기업만이 느슨하게 사업에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경제정책은 정부가 재산권을 배분하는 행위다.재산권 배분의 공정성이란 면에서 출신성분에 따라 이처럼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수산업이라고 해서 일반 제조업과 다를 것이 없다.제조업 분야에서 특정분야에 새로운 기업이 참여하는 것을 막는 진입장벽 정책은 소비자가 가져야 할 몫을 고스란히 기존의 생산자에게 주는효과를 가져온다.
멸치어업에서의 지역제한정책 역시 정부가 제2구역에서 상대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이나 영세어민에게 정당화되기어려운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같은 혜택은 누구로부터 오는 것일까.이는 필자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지갑으로부터 나온다.일반 농산물가격은 수입자유화와 생산기술 향상으로 많이 싸졌다.하지만 멸치의 가격은 지나치게 비싸 서민들이 쉽게 사먹을 수 없을 정도다.
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가.지역제한정책의 폐해가 그 대부분을 책임져야 한다.일반 국민은 비싼 멸치를 사먹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영세어민보호용 세금을 갖다 바치고 있다.
주무부처는 수자원고갈과 경남 이외지역의 영세어민보호를 위해 지역제한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자원보호는 이미 충분하게 긴 법정금지기간만으로도 유지될 수있고,영세어민들의 보호를 위해 일반 국민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멸치의 지역제한정책도 별난 문제가 아니다.정부가 추진했던 주유소의 거리제한 철폐,소주와 탁주시장의 영업지역제한 철폐와 꼭같은 문제다.
97년이면 멸치도 수입이 된다.중국의 값싼 멸치가 물밀듯이 몰려올 것이 뻔한데,정부는 지역마다 높은 벽을 쌓아 멸치사업의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정책당국은깊이 생각해야 한다.
제조업이건 수산업이건 국민에 값싸고 품질좋은 물건을 공급하는데는 규제완화를 통한 경쟁촉진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멸치잡이도 시장경제원리로부터 결코 성역으로 남아있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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