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붉은 빛의 사람들 - 황토고원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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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붉은 빛의 사람들 - 황토고원1’- 곽효환(1967~ )

경계가 무뎌진 붉은 곡선이 둘러싸 빚은 고원

굵은 물줄기 하나 길 없는 평원을 가르다

붉은 물 붉은 흙 그리고 붉은 벽돌집

마른 풀더미 혹은 관목들 드문드문 무리 짓는

붉은 산 너머 비치는 석양 고원의 붉은 풍경들

수천 수만 년을 흘러온 붉은 물길에 담겨

온통 붉다

하, 붉게 고운 이곳에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붉은 빛을 따라 대대손손 살아온

붉은 빛의 사람들

붉은 강에 수많은 세월이 떠내려 오고

또 사람이 실려 가고

이 물길 끝에 날 닮은 또 다른 내가 있을 것 같다.


나는 저녁엔 삐뚤빼뚤한 동네 골목길을 올라간다. 산책은 내가 올라온 골목길 아래 펼쳐진 다닥다닥 알록달록 그만그만하게 서로의 이마를 맞비비고 있는, 넘치는 지붕의 풍광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가난한 동네엔 왜 그리 붉은 지붕이 많은지, 저녁 햇살에 한층 붉은빛을 띠고 있다. 이 시에도 그런 붉음이 넘치고 있다. 먼 이국의 고원지대 오지 사람들의 삶이 배경이지만 붉은빛 가득한 풍광과 사람들의 얼굴은 낯설지가 않다. 붉은빛은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강렬하고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다. 붉은빛을 따라 대대손손 살아온 붉은빛의 사람들의 대열의 끝에서 “날 닮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대목은 눈물겹다. 내 산책의 끝에서 바라보는 저녁 햇살에 한층 붉어진 우리 동네 지붕들만큼이나.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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