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네? 그 쪽은 난간 때문에 설치하기가 곤란하대요.』 『빨리서둘러! 그리고 저격수들에게 다리 바깥쪽으로 위협사격을 하라고해.만일 아이를 해칠 것 같으면 사살해도 좋다고 해.』 김세진형사는 강태구가 하도 다급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가 직감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희경의 입가에미소가 떠올랐다.역시 그이는 대단한 사람이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뚫고 나를 향해 달려오다니….강물 을 가르고 백마를 그린깃발을 단 모터보트가 희경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보트 위에서는언뜻 언뜻 그이의 모습도 보였다.희경의 가슴속이 시원해지면서 얼굴이 환해졌다.이제 눈 질끈 감고 한번만 용기를 내면 그이와영원히 함께 할 수 있 다.희경은 아이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안녕! 나중에 다시 만나자.니네 엄마가 빨리 좋아지기를 빌겠다.』 희경은 달려오는 보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보트는 마치눈앞에 있기라도 한 양 가깝게 여겨졌다.한 걸음이면 보트위에 올라탈 것 같았다.보트가 경찰보트 사이를 뚫고 들어오자 경찰보트가 요란한 경적 소리를 내며 쫓아왔다.희경은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이건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보트가 다리 아래를 지나가 버리면 만사 끝이다.이 때 요란한 총성과 함께 희경의 발 아래로 불꽃이 튀었다.희경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다시 총성과 함께 희경의 발 주위로 불꽃이 튀었다 .희경은 갑자기 마음이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이게 바로 그이가 말한 재미구나.역시 재미는 위험과 비례하는 거다.희경은 달려오는 백마를 향해 힘껏 몸을 던졌다.희경은 급속도로 아래로 떨어졌다.지난번에는 그이 품에 안겨 떨어졌지만 이번 에는 혼자 떨어지는 것만이 다르다.다시 요란한 총소리가 들리더니 아찔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드디어 해냈다.만족스러운 웃음이 희경의 입가에 떠올랐다.이제 한숨 자고 눈을 뜨면 그이와 아이들은 내 옆에서 행복하게 웃음짓고 있으리라.희 경은 정신이 가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그런데 전과 같이 정신이 완전히 잃어지지 않았다.그리고 무언가 주위가 시끄러웠다.눈앞에는 사람들의 윤곽이 아물거렸고 귀에서는여자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도 아련히 들려왔다.
『빨리 빨리 서둘러….』 누군가가 희경의 몸을 붙잡았다.누군가가 희경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눈앞으로 희미하게 사람들의윤곽이 아른거렸다.
『목이 부러진 것 같은데요.』 『빨리 병원으로 옮겨.』 『가슴이 뻥 뚫린게 살기는 다 틀렸어.』 『어떤 놈이야.도대체…누가 가슴을 쐈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