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이젠‘가문 관리’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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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프라이빗뱅킹(PB)이 진화하고 있다. 자산 관리에서 생애 관리로, 개인 부자고객 관리에서 가문 관리로 더 고급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10일 서울 강남 파이낸스빌딩에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열었다. 이곳은 여느 PB와 달리 ‘자산 관리’보다 ‘생애 관리’를 내세우고 있다. 기존 PB가 투자처를 적절히 분배해 주고, 각종 상품과 정보를 제공하는 게 주업무였다면 이 센터 PB들은 투자는 물론 자녀 교육·상속, 기업 운영, 문화생활 등 투자자의 생활 전반을 밀착 관리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 본격적인 ‘집사형 PB’의 등장이다.

이런 서비스를 위해 PB 1인당 고객 수도 최대 20명으로 줄였다. 기존 PB들은 보통 100~150명의 고객을 관리해 왔다. 대신 문턱이 한참 높다. 이 센터의 고객이 되려면 금융자산이 30억원은 돼야 한다. 기존은 5억원이었다.

신한은행은 한발 더 나갔다. 금융자산 50억~100억원대 계층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가문 관리(Family Office)형’ PB센터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관석 PB사업부 부부장은 “일단 강남과 강북에 한 곳씩 열기로 하고 현재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가문관리는 금융회사가 한 집안의 가풍에 따라 사업과 자산운용, 자녀의 출산부터 교육·결혼·상속과 유언까지 돈에 얽힌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개념이다. 귀족 문화의 전통이 강한 유럽의 ‘재산관리인’에서 비롯, 메릴린치·JP모건 등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투자 개념을 접목해 발전시켰다.

위화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런 서비스를 국내 금융사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내에도 이른바 ‘백만장자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사인 올리버와이만에 따르면 국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유층(HNWI) 자산 규모는 지난해 1조1000억 달러 규모로 세계 8위권이다. 5년 전에는 6000억 달러 규모였다.

이들 초부유층이 바라는 서비스는 대중적인 부자들과는 다르다. 국민은행 김영규 강남파이낸스PB센터장은 “초부유층은 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이를 유지하고 자녀에게 물려 주는 문제에 더 관심을 쏟는다”며 “부동산·세무 전문가를 상주시키는 등 기존 PB센터와 차별화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자녀 혼사와 교육에까지 개입하는 ‘생애 관리’ 서비스를 앞다퉈 도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한은행 김희경 팀장은 “세대를 이어 자산을 관리한다는 개념에서 맞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소수만 모여도 막대한 투자금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를 사모펀드 형태로 조직해 증권과 부동산은 물론 유망한 중소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은행이 부유층에 제공하는 호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한 ‘가문 통치(Family Governance)’ 서비스도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자의 가족은 물론 친족들까지 관리 대상으로 삼아 상속, 계열사 분리, 지분 분할 등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맡는 것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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