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쟁점과흐름>15.박정희대통령 근대화論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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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92년 문민정부는 출범과 함께 과거 권위주의적 권력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지난 정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려 관심을 끌었다.
문민정부는 자신의 정통성을 3.1운동-임시정부-4.19혁명-5.18광주민주화운동-6월 민주항쟁의 연장선에서 찾음으로써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와 다른 새로운 정통성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 역사에는 단절이 있을 수 없으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독립운동-반공에 기초한 국가건설(이승만)-경제발전(박정희와 전두환)-민주화(노태우와 김영삼)로 이어진다는 논지에 입각해 반격에 나섬으로써 정치적 쟁점이 된 바 있다.
그 쟁점이 사실상 권위주의 정치체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이라는 명시적 성과를 낳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문제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개발방식에 대한 평가 작업은 지금 우리와 동시대에 대한 평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료의 풍부함,관련 인물의 생존 등 연구상의 유리한 점이 없지 않지만,반면 현재 생존해 있는 많은 사람들 자신의 과거 삶에 대한 평가 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가져다 주는 측면도 있었다.
93년 후반기에 정치.경제.역사학계에서 본격화하기 시작한 박정권의 근대화에 대한 과학적 재평가 작업에서 등장한 핵심적 쟁점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근대화와의 상관관계였다.
다시말해 권위주의 체제 「때문에」근대화.산업화가 이루어졌느냐,아니면 권위주의 체제에도 「불구하고」경제발전이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대체적으로 전자가 관변학자나 주류 정치.경제학자의 입장이라 한다면,주로 후자는 박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의 관점이었다.
그러나 이 논쟁과정에서 정치권.언론계와 달리 박정권의 개발방식을 학술적으로 적극 옹호하려는 학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안병만(安秉萬.現한국외국어대총장)교수가 행정학회의 위탁을 받아 정치학자.행정학자 2백5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총체적으로 봐서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통치역량이 큰 인물이자 통치업적이 가장 많았던 대통령으로 평가되었고,그 근거 로 그의 패기.결단이 거론돼 관심을 끈 바 있다.
이후 安교수는 『역사비평』93년 겨울호에 게재된 「박정희정권18년을 재평가한다」토론회에 참석해 참석자 중 유일하게 박정권의 권위주의 체제가 한국의 근대화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했음을 주장했다.박정권이 결국 유신으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최소한 제3공화국에서는 민주적 절차나 법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평가한 安교수는 그의 리더십이 경제근대화의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고 진단해 다른 학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성장을 위해서는 일종의 독재가 필요악이라는 「개발독재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이 토론에서 곧바로 비판받게 된다.
金蒼浩〈本社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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